심백원

영문 Sim Baekw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2년
활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18년 1월 18일
활동 시기/일시 1918년 4월 28일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옴스크시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한인사회당 창립 당원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

개설

심백원[?~?]은 러시아 연해주에서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와 함께 초기 재러 한인 노동자 운동을 조직했다. 한인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의 창립 당원으로 활동했으며, 러시아 볼셰비키와 연대하여 반제, 반일 독립운동을 했다.

활동 사항

심백원은 1912년 권업회를 통해 ‘고 이준공 전기간행 및 유족 규휼 의연금 모집’에 당시 돈 1원을 기증했으며, 1913년 블라고벤스크 공성학교 의연금을 기증하는 등 재러 한인 사회의 상호 부조와 교육 운동에 힘썼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 후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이인섭, 오하묵 등과 최초의 노동자 조직인 우랄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재러 한인 노동자들의 권익과 조국 독립 의식을 높였다. 1918년 1월 18일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에서 개최된 조선인정치망명자회의에 이인섭, 김용환, 오성묵과 옴스크 대표로 참석했다. 민족운동을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해 볼셰비키와 합작하자는 이동휘의 입장을 지지하였고, 1918년 4월 28일 정식 한인사회당을 창당하기 위한 회의에 김립, 오와실리, 오성묵, 안홍근, 유동열, 박애 등과 함께 참석했다.

2명의 일본군이 살해된 사건을 빌미로 일본의 육전대[해병대의 옛 이름]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하고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 입성이 임박해지자 소비에트, 볼셰비키들은 빨치산 체제로 전환을 결정하고 흑룡강을 따라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때, 한인사회당 간부들은 흑룡강 상류를 따라 몽골을 경유해 중국의 신장, 중앙아시아 등지로 가서 모스크바 볼셰비키들과 연락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김립, 김알렉산드라, 유동열, 이인섭, 한홍근 등 열두 명의 한인사회당 간부 및 적위파군 수백 명은 러시아 상선 바론코르프호를 타고 흑룡강을 따라 러시아 블라고베센스크 방향으로 도피하던 중 한인 촌락 예카테리노니콜스크 근처에서 백위파군에 체포되어 하바롭스크로 압송되었다. 당시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를 제외한 심백원, 김립, 유동열, 이인섭 등 십여 명은 중국인 노동자로 가장해 석방되었다.

참고문헌
  • 반병률,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신서원, 2013)
  • 『권업신문』(1912. 12. 22)
  • 『권업신문』(191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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