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 Son Poongi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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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활동 시기/일시 | 1915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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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9월 |
몰년 시기/일시 | 1921년 9월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용천군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우랄 지방에 있는 뻬름목재소에서 일하던 손풍익은 김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를 만나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러시아 옴스크에서 러시아 외교부 전권위원부 번역부 교정원으로 활동하다가 혁명 사업을 위해 조선으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손풍익은 조선으로 가지 않고 러시아 수찬 지역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를 러시아 공산당의 지도 아래 두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자유시로 이동하지 않고 수찬 지역에 남아 있던 한인 빨치산 부대들은 연해주 한인총회를 조직하고 하나로 통합되었다. 김경천이 연해주 한인총회 사령관을 맡았는데, 극동공화국 정부와 제휴하고자 했다. 손풍익은 러시아 공산당과 연해주 한인총회의 결합을 위해 노력하였다.
손풍익의 주도로 1921년 9월 러시아 추구예프스키현 코로빈카 마을에서 연해주 한인노동자대회가 개최되었다. 단체 명칭과 간부 인원 후보 선정 과정에서 연해주 한인총회와 수찬 한인빨치산부대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김경천, 강국모, 한창걸 사이에 분란이 발생했다. 김경천이 빨치산 부대의 이름으로 자신이 이미 선포한 고려혁명군을 주장했지만, 손풍익은 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인사회당 군대를 제안했고 이것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간부 인원 후보로는 회장 강국모, 부회장 왕재호, 군무 김경천, 외교 한창걸, 당조직원 손풍익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김경천을 지지하는 일부 병사들이 한인총회 간부들을 무장 해제시키는 데 동원되었고, 이에 격분한 강국모와 한창걸은 권총을 소지한 채 김경천 등을 죽이겠다고 나섰다. 손풍익이 강국모를 만류하던 중에 실수로 권총이 발사되었고, 손풍익은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