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Пак Чи Джу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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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Park Chij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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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0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1922년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1952년 |
활동 시기/일시 | 1952년 |
몰년 시기/일시 | 1972년 |
묘소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주 |
원어 항목명 | Пак Чи Джун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소비에트 적군 제29 기병연대 전투원|홍범도 부대 전투원 |
192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치준은 1901년 태어나 1918년부터 항일 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소비에트 적군 지휘관 과정으로 파견되어 제29 기병연대에서 복무하였으며, 1920년대 홍범도와 함께 일본군에 대항하여 싸웠다. 전쟁 공적으로 박길남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총을 받았고, 스탈린의 서명이 쓰인 상장도 받았다. 1930년대부터 소련 공산당의 명령으로 금광 감독에 임명되어 1952년까지 러시아 비류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 니즈넨우진스크, 러시아 체렘호보시 등 탄광 지대에서 일하였다. 1952년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하였고, 죽기 전까지 과거의 전우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박치준은 당시 카자흐스탄에 살았던 홍범도와도 편지를 주고받았다. 박치준은 1972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사망했는데, 장례식을 치루면서 박치준이 보냈던 편지들과 보관하던 서류들을 불태웠다고 한다.
1972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타슈켄트주 타샤울에 묻혔다.
박길남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총을 받았고, 스탈린의 서명이 쓰인 상장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