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Пак Чон Ли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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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淸林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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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4년 |
수학 시기/일시 | 1927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1일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6월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10월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11월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활동 시기/일시 | 1937년 |
몰년 시기/일시 | 1991년 |
출생지 | 대한민국 강원도 철원 |
학교|수학지 | 러시아 모스크바시 |
원어 항목명 | Пак Чон Ли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192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 한인 빨치산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청림은 1899년 강원도 철원 빈농 가문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마친 이후 1919년 3월 1일 3.1운동에 참가하여 전단을 배포하였다. 1919년 6월 몇몇 젊은이들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 수이푼 지역 쟈피거우로 왔고 혈성단에 가담하였다. 혈성단 부대원으로 여러 차례 일본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1920년 10월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러시아 아누치노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박청림은 당시 재러 한인들을 괴롭히던 마적단 홍후즈들과의 전투에도 참가하였다. 1921년 11월 박청림은 올가항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1924년 극동공산주의노동자대학에 입학하여 공부와 함께 항일 선전 활동에 참가하였다. 1927년 극동공산주의노동자대학을 졸업한 이후 러시아 연해주 행정 및 당기관에서 한인 문제를 담당하였다. 1937년 부당한 탄압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및 코미 자치 공화국 수용소에서 12년간 수감 생활을 하였다. 1957년 복권되었고, 1991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