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순

한자 朴鎭順
영문 Park Jinso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러시아 모스크바주 모스크바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4월 15일
수학 시기/일시 1922년
수학 시기/일시 1925년 6월
활동 시기/일시 1917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19년 11월
활동 시기/일시 1920년 7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22년 4월
활동 시기/일시 1925년
활동 시기/일시 1926년
활동 시기/일시 1929년
활동 시기/일시 1936년
몰년 시기/일시 1938년 3월 19일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6년 7월18일
추모 시기/일시 2006년
출생지 러시아 연해주 올긴스크 니콜라예프카
학교|수학지 러시아 모스크바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러시아 모스크바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고려공산당 코민테른 교섭 대표|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박진순(朴鎭順)[1897~1938]은 1910년부터 러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자로 한인사회당,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주요 인물이었다. 1920년 7월에는 한인사회당 대표 자격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참석하였으며, 1921년 말에는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코민테른 교섭 대표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정당성과 자유시 참변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활동을 벌였다. 1922년부터 1925년까지 러시아 모스크바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했으며, 1926년 조선농민사의 농민인터내셔널 가입을 위한 대표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활동하였다. 박치순(朴致順)·박춘우(朴春宇)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박진순은 1897년 러시아 연해주 올긴스크 니콜라예프카 마을에서 태어나 상급학교를 졸업하였다. 1915년 한인 민족 혁명 단체에 가담하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블라다보스토크한인회 비서, 한인병사동맹 비서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신민단한인사회당의 통합 대회로 열린 한인사회당 제2차 대회에서 중앙 위원이자 모스크바 파견 대표로 선출되었다. 모스크바 파견 대표로 함께 선출된 박애, 이한영과 함께 1919년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한 박진순은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박진순을 비롯한 한인사회당 대표단은 한인사회당의 코민테른 가입, 제7차 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참석, 러시아 외무인민위원회와의 교섭, 한인사회당에 대한 자금 요청 등의 활동을 벌였다.

1920년 4월 박애이한영이 귀한한 후, 박진순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표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온 한형권과 협력하여 러시아 정부로부터 금화 200만 루블 제공 약속을 받아냈다. 1920년 7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한인사회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하여 민족식민지분과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코민테른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박진순은 1921년 5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상해파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에 참석하여 이동휘, 홍도와 함께 코민테른과의 연락을 위한 전권 대표로 선임되었다. 박진순은 상해파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가 종료되고 약 한 달 후인 6월 18일 중국 상해를 출발하여 10월경 러시아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1921년 11월 상해파 대표단의 일원으로 레닌과 회견하는 등 상해파 고려공산당의 정당성과 자유시 참변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22년 4월 코민테른은 고려공산당의 분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박진순에게 3개월의 시한부 활동 금지 조치를 내렸다. 여러 이유로 근신 기간이 길어지자 박진순은 1922년부터 1925년 6월까지 러시아 모스크바의 모스크바대학 철학과에서 공부하였다. 모스크바 대학에 재학하면서 동방노력자공산대학, 국제사관학교에 강사로 출강하며 유물사관 과목을 가르쳤다.

1925년 여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서 고려공산당창립대표회준비위원회[오르그뷰로]의 권유에 따라 중국 북간도의 당 학교와 신문 편집 사업에 관여하였다. 1925년 10월 천도교 산하 단체인 조선농민사의 농민인터내셔널[크레스틴테른] 가입을 위한 해외 대표로 선정되었다. 1926년 초 조선농민사 대표단의 일원으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활동하였다. 1926년 6월부터 1927년 1월까지 코민테른 집행위원회에서 조선 문제에 관한 보고자 자격으로 일했다. 박진순은 1929년 중국 간도에서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 기관지 『볼셰비끼』의 편집에 참여하였으며, 1936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출판사 조선과에서 교정인으로 근무하였다. 1937년 테러 단체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소련 최고재판소 군협의회에서 총살형을 선고받았고, 1938년 3월 19일 총살되었다. 1956년 7월 18일 소련 최고회의 군협의회 결정으로 복권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6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진순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권희영, 「고려공산당 이론가 박진순의 생애와 사상」(『역사비평』6, 역사비평사, 1989)
  • 임경석, 「반식민주의 역사 인식과 마르크스주의-박진순의 개벽 기고문을 중심으로」(『사림』56, 수선사학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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