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한자 朴殷植
영문 Park Eunsi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9년
활동 시기/일시 1905년~1910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5년
몰년 시기/일시 1925년
추모 시기/일시 1962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도 황주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성격 독립운동가|역사학자
성별
대표 경력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통령
정의

1910년대 후반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개설

박은식(朴殷植)[1859~1925]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중국과 러시아에서 주로 활동했다. 1917년 전로한족회 중앙총회가 발간한 기간지 『청구신보』의 주필을 맡기도 했다. 이후 중국 상해로 옮겨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다가 1925년 사망했다.

가계

박은식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박용호(朴用浩)이다.

활동 사항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아버지에게 유학 교육을 받았고 성리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졌다. 1898년 독립협회의 사상을 접한 후 개화사상가로 애국 계몽 운동에 매진했다. 1905년부터 19010년까지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을 비롯한 다수의 신문과 잡지에 많은 논설을 썼다. 또한 박은식은 민족혼을 지켜야 미래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으며, 역사 서술에 집중하고자 1911년 4월 만주로 망명했다. 중국 상해 등지에서 『한국통사』 등 집필에 집중하였다. 1917년 7월 5일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회 중앙총회의 기관지로 『청구신보』가 발행되었는데, 윤해를 비롯하여 저명인사들이 주필을 맡았고, 박은식도 주필로 활동했다. 박은식은 1919년 3·1 운동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이하면서, 61세의 고령임에도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했다. 다시 상해로 옮겨 1920년 1월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간행했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 소집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약해지자 사태 수습을 위해 독립신문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1925년 이승만이 탄핵되자 박은식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통령에 취임했으며, 내각제로 개헌을 했다. 대통령을 사임하고 얼마 뒤 숨을 거두었다.

저술 및 작품

박은식은 『겸곡문고(謙谷文稿)』, 『학규신론(學規新論)』,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안중근전(安重根傳)』, 『한국통사』, 『발해사(渤海史)』, 「이순신전(李舜臣傳)」 등을 저술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은식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재소한인 민족운동사-연구 현황과 자료 해설』(국학자료원, 1998)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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