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朴密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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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Park Milya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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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2월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5월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10월 18일 |
몰년 시기/일시 | 1937년 12월 8일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활동지 | 러시아 하바롭스크주 하바롭스크시 |
활동지 | 러시아 치타주 치타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1920년대 러시아 한인 무장 독립운동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밀양은 1914년 반전 선전 활동으로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러시아 하바롭프스크에서 청년자강회(靑年自强會) 회장을 지냈다. 1919년 6월 6일 니콜리스크 민회 본부의 결사단(決死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할 사관 후보생을 모집해 상해로 파견하는 문제를 협의하였다. 1921년 1월 16일 치타에서 열린 러시아 공산당 극동국 소속 한인부 정기 회의에서 통역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21년 5월 4일 고려공산당 창립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1년 9월 3일 고려혁명군에 입대하여 제1여단 본부 부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1921년 12월 27일 개최된 고려혁명군 제1여단 총회에서는 채영이 여단창, 박밀양이 군정 위원에 임명되었다.
1922년 10월 18일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극동국 주관으로 베르흐네우딘스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통합 중앙위원들의 제1차 협의회에 참여하였다. 1935년 특별한 이유 없이 체포되어 1936년 마가단으로 유배된 후, 1937년 12월 8일 총살당했다.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밀양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