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석

한자 金河錫
영문 Kim Haseo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6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9월 15일
활동 시기/일시 1921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5월
활동 시기/일시 1921년 10월
활동 시기/일시 1929년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학교|수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 지휘관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하석(金河錫)[1886~?]은 대한국민의회 지도자 중 한 명이다. 1920년대 초 에호 한인부대 계획을 추진했으며, 자유대대 지휘관이자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중앙 위원, 고려혁명군정의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3·1 운동 이후 중국 간도를 거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김하석대한국민의회 군무부장 대리가 되어 에호 한인부대 조직 계획을 추진하였다. 에호 한인부대는 러시아 백위군을 지지하고 적군에 대항하는 조선국민대대를 이용하여 항일 무장 부대를 조직하려는 것이었다. 김하석은 조선국민대대 구성원 중에서 항일 운동에 참여하려는 한인들을 분리하여 제2 조선국민대대를 조직하였고, 러시아 백위군 사령관 호르바트와 계약을 맺고 한인 청년을 중동 철도 연선 지역에 주둔한 중동철도수비대에 편입시켰다. 그러나 이 계획은 부대원들이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하고 주로 노역만 하면서 실패하였다. 이때 조직된 제2 조선국민대대가 중동 철도 에호[掖河]역에 주둔했기 때문에 에호 부대라 불렸다. 에호 부대는 이후 러시아 자유시로 이동하여 자유대대의 근간이 되었다.

김하석은 1920년 4월 일본군이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대규모 토벌을 시작하자 대한국민의회 간부들과 함께 러시아 아무르주 블라고베셴스크로 이주했다. 1920년 9월 15일 대한국민의회 의장 문창범 등 지도부 7명이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한 성명서에 대한국민의회 군무부장 겸 사법부장을 맡고 있던 김하석도 서명하였다. 1921년 5월 러시아 치타 극동국 한인부와 대립하여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주도로 세워진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으로 선정되었고, 같은 달 창립된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의 중앙 위원에 선출되었다. 김하석은 자유시 사변으로 이어진 군대 통수권을 둘러싼 다툼 과정에서 대한의용군의 주요한 공격 대상이었다. 자유시 사변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분쟁을 조사하기 위해 1921년 10월 말경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설립된 한국위원회에 참석하여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192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목선조합의 조합장이 되었다. 1929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벌어진 당 청결 운동 과정에서 에호 한인부대 계획이 문제가 되어 소련 공산당에서 축출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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