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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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84년 5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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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1일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4월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출생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북청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884년 5월 21일 함경남도 북청 출생이며 사망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김찬은 1919년 11월 1일[음력 9월 9일]에 출범한 군비단의 조직에 참여했다. 군비단은 장백현 일대의 한인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여 활동하며 무기 구입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내전이 벌어지고 있던 러시아 연해주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용이했기 때문에 1920년 4월[양력 5월] 군사부장 김찬을 대표로 무기 구입을 위해 구성된 일행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비단의 무기 구매 사업을 중개하고 있던 홍파는 상해파 인사들과 연해주에 한인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고 통합하려 했다. 이에 따라 김찬은 박춘근과 함께 군비단의 군사 본부를 연해주로 옮길 것을 홍파와 협의했다. 이전 지점으로 이만을 결정한 후 이만까지 시찰하고 장백현으로 돌아갔다. 1921년 7월 13일 이만의 군비단 군사부는 군비단의 이름을 고려혁명의용군(高麗革命義勇軍)으로 고쳤다. 자유시에서 이동해 온 상해파와 고려혁명의용군의 간부들은 1921년 9월 15일 이만 와구통촌에서 대회를 열고 고려의용군사의회를 재편했다. 김찬은 재편된 고려의용군사의회에서 서무부장을 맡았다.
1977년에 건국 포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