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직

한자 金利稷
영문 Kim Yijik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우수리스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5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활동 시기/일시 1912년
활동 시기/일시 1913년
활동 시기/일시 1917년
몰년 시기/일시 1920년
추모 시기/일시 1977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용강군
거주|이주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니콜스크 한인회 회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

개설

김이직(金利稷)[1875~1920]은 을사늑약 이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로 망명하여 1912년 동흥학교 설립에 참여하였다. 권업회 니콜스크 지회에서 활동했으며 1917년 니콜스크 한인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18년 6월 전로중앙총회 상설의원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1919년 대한국민의회 상설의원을 지냈다.

가계

김이직의 여동생은 김윤신이며, 김 타마라 안드레예브나가 조카이다.

활동 사항

김이직의 본명은 김정일이다. 1870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에 한문을 수학했으며, 1900년 향리에 명신학원을 설립해 육영 사업을 하였다. 1904년 대한제국 장교로 근무했으며, 을사늑약 이후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로 망명하며 이름을 김이직으로 바꾸었다. 김이직은 망명 후 애국지사인 김치보가 운영하는 덕창국[건재 약국]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후 덕창국 니콜스크 지점에서 주임을 맡았다. 니콜스크 덕창국은 아스츠라한스카야(Astrakhanskaya) 거리 10번[현 시비르체바 거리 10번]에 있었다.

김이직은 1912년 한인 학교인 동흥학교 설립 참가를 계기로 교육 운동에 뛰어들었다. 1913년 1월 노동회를 발기했으며, 권업회 니콜스크 지회 총무로 선출되었다. 1913년 이갑 선생 치료비 모금을 위한 니콜스크 지역 책임자, 안중근 의사 전기 간행을 위한 기념사진 판매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김이직은 러시아 2월 혁명 후인 1917년 10월 니콜스크 한인회 발기인 대표로서 한인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1918년 6월 니콜스크에서 개최된 제2회 특별전로한족대표회의에 니콜스크 대표로 참석해 상설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또한 3·1 운동 직전에 전로한족중앙총회가 확대, 개편된 대한국민의회 상설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김이직이 운영한 니콜스크 덕창국은 니콜스크시의 중요한 항일 운동 거점이자 애국자들의 모임 장소였다. 3·1 운동 이후 무장 투쟁이 활발해지면서 최재형, 김이직, 엄주필 등이 한인 빨치산 부대들에 식량, 의복, 신발, 기타 군수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소득을 동포 구제 등 자선 사업에 사용하였다. 김이직은 1920년 4월 4일 일제에 체포되어 4월 7일 살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7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이직의 공훈을 기려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 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1986)
  • 반병률,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신서원, 2013)
  • 반병률, 「제2회 특별전로한족회대표회의(1918년 6월)와 러시아 한인 사회」(『역사문화연구』17,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2)
  • 『독립신문』(1919. 10. 28, 1920. 5. 15)
  • 박 블라지미르, 「운명의 명에」(『고려일보』, 1998.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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