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빈

원어 항목명 Ким Сын Бин
한자 金承彬
영문 Kim Seungb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11월 25일
활동 시기/일시 1915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0년
활동 시기/일시 1922년
활동 시기/일시 1923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활동 시기/일시 1945년 8월
몰년 시기/일시 1981년 10월 15일
추모 시기/일시 2009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강서군
거주|이주지 중국 만주
거주|이주지 러시아 니콜리스크
거주|이주지 러시아 하바롭스크
활동지 중국 만주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묘소 러시아 하바롭스크
원어 항목명 Ким Сын Бин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한인 독립보병여단 대대장
정의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승빈(金承彬)[1895~1981]은 신흥무관학교 교관 출신으로, 러시아 내전과 장고봉 사건 및 소·일 개전에 참가했다.

활동 사항

김승빈은 평안남도 강서 출신으로, 1915년 고종의 왕실 호위 부대에 징집되어 1918년까지 복무했다. 3·1 운동에 참가한 뒤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까지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활동했다. 김승빈은 1920년 말, 경신참변 당시 신흥무관학교 사관생들과 함께 러시아로 이동하여 오하묵(吳夏默)이 지도하던 한인 독립보병여단의 대대장이 되었다. 1921년 6월 노령과 만주의 한인 반일 무장 부대들을 통합할 당시 홍범도(洪範圖) 휘하에서 활동했으며, 8월 고려혁명군정의회가 폐지되고 1개 여단으로 재편되자 여단 내 사관 학교에서 교관으로 근무했다. 1921년 말 연해주 이만에서 반일·반백위군 전투에 참가했고, 1922년 7월 스파스크 지방에서 백위군의 진로를 차단하는 전투에 참가했다. 시베리아 내전이 끝난 뒤 1923년부터 1930년까지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7년제 인민 학교 교원으로 근무했다. 그 후 소비에트연방 국경수비대에서 근무했으며, 1938년 소련과 일본의 국경선 군사 충돌 사건인 ‘장고봉(張鼓峰) 사건’과 1945년 8월 소·일 개전(開戰)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소비에트연방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김승빈은 공직에서 은퇴한 후 하바롭스크에서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1981년 사망했다.

묘소

김승빈의 묘소는 하바롭스크의 공동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김승빈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소련 정부로부터 ‘붉은 별’ 훈장과 ‘일본 타승’ 훈장 등 모두 여섯 차례 훈장을 받았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승빈의 공적을 기려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 사회주의운동 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최 발렌틴 발렌티노비치, 『사진으로 본 러시아 한인의 항일 독립운동』(국사편찬위원회·재러독립유공자후손협회·주러시아연방 한국대사관, 2004)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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