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무

한자 金成武
영문 Kim Seongmo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2월 13일
활동 시기/일시 1909년 6월 4일
활동 시기/일시 1910년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성무(金成武)[?~?]는 『대동공보』에 창간에 관여했고 안창호, 함동철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평안도파를 구성했다.

활동 사항

김성무는 1908년 12월 13일 공립협회에서 파견한 블라디보스토크 사무대리인 자격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이강과 만나 공립협회 조직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미주 본토의 공립협회가 1909년 2월 1일 국민회로 개칭하자 김성무는 국민회 회원이 되어 활동했다. 국민회 학무부는 1909년 3월 23일부터 야학을 설립했고 김성무는 영어 교사를 맡았다. 이후 김성무는 국민회 러시아 원동 지부를 조직하고 태동실업주식회사를 설립하려고 했으나 마적의 방해로 실패했다. 1909년 6월 4일 이강, 윤일병, 함동철, 정순만 등과 함께 국민회에서 연해주 군지사에게 국민회 조직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1910년 봄 미주 공립협회 회원이었던 김성무는 안창호의 권유를 받고 중국 흑룡강성 미산스리와[十里洼]에 들어와 토지를 사들이고 교회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의 아동 교육과 농업 장려, 동포 구제 등의 사업을 전개하였다. 김성무는 김명성(金明星)과 함께 사숙(私塾)을 열고 기독교 전도와 교육 사업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양성춘 살해 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1911년 6월 21일 정순만이 살해되자 김성무는 안창호, 정재관, 이강 등 대한인국민회 인물들과 함께 러시아 당국에 의해 법정에 출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후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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