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金洛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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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Kim Nakhy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9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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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06년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3월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6월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40년 |
추모 시기/일시 | 2009년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얀치헤 마을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낙현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얀치헤 마을에서 태어났다. 1906년에 아무르 강변의 니콜라예프스크[니항(尼港)]로 이사하여 소학교를 졸업했다. 니콜라예프스크가 일본에 점령됐을 때 김낙현은 박 바실리, 정서화, 엄지연 등과 함께 고려청년동맹(高麗靑年同盟)이라는 지하 조직을 결성하여 선전 사업을 전개했다. 1920년 3월에는 니콜라예프스크 전투에서 트랴피친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했다. 트랴피친이 니항 사변을 통해 일본 군인과 포로, 그리고 일본인 주민들까지 살해하자 트랴피친의 처형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졌는데, 김낙현은 박 바실리와 함께 처형에 찬성하는 입장에 섰다. 니항 부대가 자유시로 옮겨간 후부터 김낙현은 자유대대에서 활동했다. 1921년 6월 고려혁명군 편성에 합류하여 지휘관이 되었고, 1928년에 레닌그라드 국제사관학교 조선인부대에서 소대장으로 있었다. 이후 김낙현은 소련에서 활동을 하였는데 1930년대 중엽에 소련공산당 숙청 당시 체포되었다가 1940년에 석방되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시에서 말년을 보냈다. 정확한 사망 연도는 확인되지 않는다.
2009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낙현의 공적을 기려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