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Ким 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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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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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4년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
수학 시기/일시 | 1931년 |
활동 시기/일시 | 1934년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57년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 |
학교|수학지 | 러시아 연해주 |
학교|수학지 | 러시아 모스크바 |
활동지 |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
원어 항목명 | Ким Михаил Михайлович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전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17차 대회 대표 |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재러 한인 빨치산 부대를 지휘했던 독립운동가.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1896~1938]는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 빨치산 부대 전투 지휘관으로 활동하였고, 전쟁 후에는 러시아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에서 토지국 위원, 소비에트 대표로 정치 활동을 하였으나 1938년 스탈린의 탄압으로 총살되었다가 1957년 완전 복권되었다.
김 미하일 미하일로비치는 러시아 연해주 지신허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러시아 연해주 아지미에 있는 2년제 학교를 마치고 라즈돌리노예의 교사 양성 과정과 블라디보스토크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교사로 일했다. 1914년 제정 러시아의 군대에 징집되었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에 있는 군사 학교를 마치고 소위로 독일 전선에 파견되었다. 군에서 볼셰비키들과 교류하였으며, 제국주의 전쟁을 반대하는 선전 활동을 했다. 1917년 동원 해제되어 원동으로 돌아왔고, 한인 애국자들이 조직한 빨치산 부대에 입대하여 지휘관이 되었다. 1921년 소비에트연방 공산당에 입당한 후, 일본군과 백위군과의 전투 지휘관으로 활동했으며 만주 지역에 파견되어 애국 저항 세력을 모집하였다. 전쟁 종료 후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토지국 소비에트 위원이 되었다. 1923년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소비에트 1차대회 대표로 출석하였다. 1931년 제4차 원동 지방 소비에트 대표가 되었고,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붉은교수대학에서 수학했다. 1934년 전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17차 대회 대표로 선출되었다. 1938년 스탈린 탄압 당시 총살당했다. 1957년 소비에트 연방 최고재판소 군사위원회 의결에 따라 완전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