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일

한자 高昌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4월 6일
추모 시기/일시 1989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경원
학교|수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했으며, 1919년 대한국민의회에서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한 독립운동가.

개설

고창일(高昌一)[1892~?]은 1919년 대한국민의회에서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했으며, 1949년 한국의 UN 가입 신청에 공헌을 하였다.

활동 사항

고창일은 1892년 함경북도 경원 출신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달냐워스톡대학을 졸업하고 징병으로 인해 러시아제국 장교로 종군하였다. 1917년 12월 노령 한인 사회의 조직화, 체계화를 위하여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가 결성되자 엄주필, 한미하일과 함께 검사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전로한족회중앙총회는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발전되었으며 영어와 불어를 소통할수 있었던 고창일윤해와 함께 대한국민의회의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발되었다. 1919년 2월 5일 출발했지만 시베리아 내전으로 교통이 두절되어 파리강화회의가 끝난 1919년 9월 26일 파리에 도착하였다. 그렇지만 불어로 「한국의 독립과 평화」, 「자유 한국」 등의 발표를 통해 한국 독립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다. 1920년 5월 상해로 와서 다시 러시아로 갔다. 동년 6월경 문창범, 중국 북경으로부터 온 박용만, 유동열 등과 함께 이르쿠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하고 유동열, 김하석, 최고려, 안병찬 등과 고려공산당[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을 조직하였다. 1923년 상해 국민대표회 개최 시 창조파에 참여하였다. 그 후 1933년 8월 조선공산당 만주 길림성 화룡현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함흥, 원산 등지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하얼빈에서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7년 남조선과도입법의회 의원을 역임하고, 1948년 초대 외무부 차관, 1949년 외무부 장관 서리가 되어 한국의 UN 가입신청에 공헌을 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납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89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고창일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이현희, 『임정과 이동녕 연구』(일조각, 1989)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http://www.mpva.go.kr/narasarang/gonghun_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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