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국모

한자 姜國模
영문 Kan Kuk Mo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말~1920년 초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북청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혈성단 단장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연해주 수이푼 지역에서 조직된 혈성단의 단장이자 무장 독립운동가.

개설

강국모혈성단과 대한독립군단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였다.

활동 사항

강국모(姜國模)[?~?]는 함경남도 북청에서 태어났다. 구한국 군인 출신으로 경술국치 이후 러시아로 망명하여 오오츠크 연안의 금광에서 일하였다. 1919년에서 1922년까지 연해주 한인 무장 부대 헤르세단(Hersendan) 제1 한인 유격대 지휘관을 역임하였다. 1919년에는 북우수리 수이푼지역에서, 1920~1921년에는 아누치노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말 1920년대 초 추풍 재피거우에서 중대장 채영, 참모장 한일제, 재무 왕채호와 함께 혈성단을 조직하였다. 강국모가 오호츠크에 있을 때 3·1 운동이 일어나 금광 한인 노동자들이 모금한 순금 4부드가 재정적 바탕이 되었다. 1920년경 혈성단은 재피거우를 떠나 서간도 지역인 도비허를 따라 봉춘으로 이동했으나 일본군이 간도 방면에 출병하자 다시 트레치-푸진으로 이동하였다. 1920년 서일을 총재로 하여 조직된 대한독립군단에 참가하였다. 1920년 채영조맹선의 부대와 함께 이르쿠츠크로 떠나자 김경천을 고빙하여 사관속성관을 조직, 군사들을 훈련시켰다. 그러나 김경천과의 불화와 당시 이르쿠츠크에서 나온 공산당원 손풍익에 총을 발사하여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1921년 혈성단을 떠났다. 1922년 3월 한족공산당이 주최한 3·1 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였다. 1923년 박일리야, 박그레고리와 함께 하마탕 얼두거우에서 농업 노동자로 있으면서 다시 군대를 모집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갔다. 그 후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참고문헌
  • 김승화, 『소련 한족사』(정태수 옮김,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