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경진

한자 李庚眞
영문 Lee Kyungji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러시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0년 2월 6일
수학 시기/일시 1947년
수학 시기/일시 1951년
수학 시기/일시 1957년 6월
활동 시기/일시 1958년
몰년 시기/일시 2002년 2월 24일
성격 문인
성별
대표 경력 월간 『쏘련녀성』 편집장
정의

소련 시기와 개방 이후 러시아에서 활동한 재러 문인.

개설

리경진(李庚眞)[1930~2008]은 한국 전쟁 중에 소련으로 유학 갔다가 1958년에 정치적 망명자가 되었다. 이후 『레닌기치』 신문에 시와 소설, 작시 이론을 투고하고 러시아 시와 소련 월간 잡지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활동 사항

리진(李眞)이란 필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본명은 리경진이다. 1930년 2월 6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했고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징집되어 인민군 중대장으로 복무했다. 1951년 여름에는 제6기 국가 유학생으로 뽑혀 소련 모스크바 전연맹국립영화대학[Всесоюз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нститут кинематографии] 시나리오과에 입학했다.

리경진은 1957년 6월 전연맹국립영화대학교를 졸업했으나 시나리오과 동료 제7기 유학생 허웅배가 1957년 11월 27일에 열린 제8차 재소련조선유학생동향회에서 김일성 개인 숭배를 비판하자 이를 지지하여 북한 귀환을 거부하고 1958년 8월에 소련에 망명했다.

망명 과정에서 리경진은 1958년 6월 24일 전연맹국립영화대학교 유학생 동료 최국인, 한대용, 정린구, 김종훈, 양원식, 리진황과 함께 학교에서 쫓겨나 모스크바 근교 모니노(Монино) 숲으로 들어가 1958년 8월 4일까지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 시기에 이미 망명 허가를 받은 허웅배가 동료들에게 이름을 진(眞)으로 쓰자고 제안해 리진은 같은 시나리오과 출신인 허웅배‧한대용과 함께 평생 ‘진’이란 필명을 썼다. 이후 허웅배·리경진·한대용은 ‘허진·리진·한진’으로 알려져 사람들은 이 세 명을 삼진(三眞)으로 불렀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전연맹국립영화대학교 망명 북한 유학생 8명 전체를 팔진(八眞)으로 부르거나 다른 망명 유학생 정추와 맹동욱까지 포함하여 십진(十眞)으로 부르기도 한다.

리경진은 1958년부터 1990년까지 소련 월간 잡지 『쏘련녀성[Советская женщина]』의 조선어 전문 번역가 및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2년 2월 24일 모스크바 근교에서 사망했다.

저술 및 작품

리경진은 공화국 간 공동 신문 『레닌기치』에 시 「까라딸 강반에서」[1960], 자선 시편 「즁가리야 시초」[1963], 작시 이론 「시에 대한 몇 가지 고찰」[1982]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연재하고 러시아 시들을 번역해 실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리경진의 시집 『해돌이』[1989]가 나왔고, 한국에서 시집 『리진 서정시집』[1996], 『하늘은 나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1999]와 소설 『윤선이』[2001], 『싸리섬은 무인도』[2001]가 출판되었다.

참고문헌
  • 김병학, 『한진 전집』(인터북스, 2011)
  • 「이진 선생을 애도하며」(『고려일보』, 2002.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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