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용

한자 韓大鎔
영문 Han Jin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카자흐스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1년 8월 17일
수학 시기/일시 1948년 9월
수학 시기/일시 1952년 10월
수학 시기/일시 1958년 6월 23일
활동 시기/일시 1958년 8월
활동 시기/일시 1963년
활동 시기/일시 1965년
활동 시기/일시 1988년
활동 시기/일시 1991년
몰년 시기/일시 1993년 7월 13일
묘소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브룬다이 공동묘지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청주(淸州)
정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시기부터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한 고려인 문인.

개설

한대용(韓大鎔)[1931~1993]은 한국 전쟁 중에 소련으로 유학 갔다가 1958년 귀국을 포기하고 정치적 망명자가 되었다. 이후 레닌기치신문사와 고려극장에서 기자와 극작가로 일하면서 다수의 소설과 희곡을 쓰고 단행본을 편찬했다.

활동 사항

한대용의 필명은 한진(韓眞)이다. 1931년 8월 17일 평양에서 극작가 한태천(韓泰泉)[1906~1975]의 맏아들로 태어나 평양 광성중학교(光成中學校)와 평양 제일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김일성종합대학교 노문학과에 입학했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1950년 7월 전선으로 나갔다. 1952년 여름 제7기 국가 유학생에 선발되어 소련 모스크바 전연맹국립영화대학교[Всесоюзны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нститут кинематографии] 시나리오과에 입학했으나 1957년 11월 27 제8차 ‘재소련조선유학생동향회’에서 시나리오과 동기생 허웅배가 김일성 개인 숭배를 공개 비판하자 이를 지지하여 북한 귀환을 거부하고 1958년 8월 소련에 망명했다. 한대용은 1958년 8월 소련 바르나울시 텔레비전방송국 책임 편집 위원, 1963년 9월 카자흐공화국 크즐오르다시에 있는 공화국 간 공동 신문인 『레닌기치』 문화 생활부 문예 담당 기자를 거쳐 1965년 2월부터 ‘조선음악희극극장’[현 고려극장] 문예부장으로 일했다. 1991년 6월 10일부터 1991년 9월 23일까지는 『고려일보』[1991년에 『레닌기치』에서 제호 변경] 주필을 역임했다. 1992년 10월부터 위암으로 투병하다 1993년 7월 13일 사망했다.

저술 및 작품

한대용『레닌기치』에 단편 소설 「찌르러기」(1962), 「밤’ 길이 끝날 때」(1962), 「소나무」(1963), 「물맛」(1963), 「녀선생」(1963), 「축포」(1963), 「어머니의 편지」(1964), 「땅의 아들」(1964), 「서리와 볕」(1965), 「뻐꾹새」(1965), 「그 고장 이름은?」(1990)과 중편 소설 「공포」(1989)를 발표했다. 희곡 작품으로는 「의부 어머니」(1964), 「고용병의 운명」(1967), 「량반전」(1972), 「봉이 김선달」(1974), 「꽃의사」(1974), 「어머니의 머리는 왜 세였나」(1976), 「산부처」(1979), 「토끼의 모험」(1981), 「너 먹고 나 먹고」(1983), 「폭발」(1985), 「나무를 흔들지 마라」(1987)를 남겼다. 1988년에는 카자흐스탄 작가동맹 관리위원회 위원 및 조선어분과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단행본 『한진 희곡집』(1988), 『꽃피는 땅』(1988), 『행복의 고향』(1988) 『해돌이』(1989), 『오늘의 빛』(1990) 편찬을 주도했다.

묘소

한진의 묘소는 카자흐스탄 알마티시 외곽의 브룬다이 공동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한진은 1986년 희곡 「폭발」(1985)로 카자흐스탄에서 문학적 성과를 이룬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베. 마일린(Б. Майлин)상을 수상했다.

참고문헌
  • 김병학, 『한진 전집』(인터북스, 2011)
  • 조규익·김병학,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삶과 문학』(글누림, 2013)
  • 조규익,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고전 수용 양상」(『국어국문학』162, 국어국문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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