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趙基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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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 Jo Gi-che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CIS |
시대 | 현대/현대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11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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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3년 |
수학 시기/일시 | 1938년 |
활동 시기/일시 | 1938년 9월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1944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1951년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7월 31일 |
출생지 |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시 |
학교|수학지 | 러시아 연해주 |
학교|수학지 | 러시아 옴스크주 옴스크시 |
활동지 |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시 |
성격 | 문학가 |
일제 강점기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였고 해방 직후 북한 문단에서 활동한 재소 고려인 시인.
조기천은 1913년 11월 6일 러시아 연해주 스파스크에서 태어났다. 조기천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소왕령]에 있는 조선사범전문학교 재학 중 『선봉』에 3편의 시를 발표하였고, 1930년에서 1944년까지 레닌기치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시를 창작하고 시평, 희곡평, 소설평 등 활발한 문필 활동을 펼쳤다. 1938년 소련 시베리아 옴스크 고리키사범대학 러시아 문학부를 졸업하였다. 해방 직후 조기천은 북한 문단에서 최정상급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조기천은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7월 31일 밤 12시경에 미군 항공기 폭격으로 사망하였다. 사후에 김정일에 의해 ‘혁명 시인’으로 칭송되었으며, 북한 문학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였다.
조기천은 조선사범전문학교에 재학하면서 단편 소설 「49」를 발표하였는데, 자료가 전해지지 않지만 러시아 연해주의 조선인 빨치산들의 영웅적 투쟁을 형상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 시 「파리꼼무나」[1930]를 비롯하여 시 「공격 대원에게」[1931], 시 「야외 연습」[1932]를 『선봉』에 발표했다. 『레닌기치』에 시 「새해」[1942]를 발표했고 시와 소설, 희곡에 대한 평론도 발표했다. 해방 직후에 조기천은 북한에서 「두만강」[1946. 3]을 비롯하여 최초의 서정 서사시 「땅의 노래」[1946. 6], 최초의 장편 서사시 『백두산』[1947. 2], 노동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장편 서사시 『생의 노래』[1950] 등을 발표했다. 시집으로 『백두산』[1947]과 『우리의 길』[1948] 등이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조기천은 서정시 28편과 서정서사시 5편, 그리고 장편서사시 2편 등 총 35편을 남겼다. 이 중에 해방 이전 소련에서 발표한 시는 4편이며, 나머지는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1948년 조기천은 북한에서 공로 메달을 수상했고, 1951년 국기 훈장 제2급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