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수

영문 Kang Taesoo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8년
수학 시기/일시 1935년
활동 시기/일시 1937년
활동 시기/일시 1938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9년
몰년 시기/일시 2001년
출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이원군
거주|이주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학교|수학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활동지 러시아 연해주
활동지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성격 문인
성별
정의

카자흐스탄에서 작품 활동을 전개한 고려인 문인.

개설

강태수[1908~2001]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사범대학 재학 중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를 당한 뒤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20년간 유형 생활을 하였다. 한글로 쓴 시와 소설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활동 사항

강태수는 1908년 함경남도 이원군에서 태어나 1927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청년 시절에 하바롭스크 등에서 포석 조명희와 가깝게 지내면서 문학적 영향을 받았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조선사범대학 문학부에 재학 중이던 1937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로 강제 이주를 당하였다. 1938년 조명희가 일본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강제 구금되자, 조명희와 가까이 지내던 강태수 역시 간첩 혐의로 체포되어 10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강태수는 첫 시 「나의 가르노」를 비롯하여 서사시, 단편 소설, 수필 등 많은 한글 작품을 발표하였다. 강태수는 20년 넘게 감금과 유형 생활을 한 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배전소에서 근무하다가 2001년 1월 5일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강태수는 1933년 『선봉』 신문에 첫 시 「나의 가르노」를 발표한 이래 1938년에 필화 사건의 계기가 된 시 「밭 갈던 아씨에게」조선사범대학 벽보신문에 발표하였다. 시 「밭 갈던 아씨에게」는 시적 화자가 밭 갈던 아가씨에게 느낀 연모의 감정을 노래한 것이었지만, 당시 스탈린 정권에서 금기시 했던 강제 이주로 떠나 왔던 고향 연해주를 그리워한 내용의 작품으로 취급되었다. 「밭 갈던 아씨에게」로 인해 필화 사건을 겪게 된 강태수는 소련 당국에 체포되어 20년 넘게 유형 생활을 하게 된다. 1959년 복권된 이후 시 「씨르다리야」를 『레닌기치』에 발표하였고, 1960년에는 단편 소설 「쓰거운 열매」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후 지속적으로 「아버지」[1965], 「잊지 못할 맛이랑」[1968], 「벗을 만나」[1971], 「멀어만 가는구려」[1983], 「마음속에 넣어 두었던 글」[1995] 등의 시를 창작하였다. 또한, 단편 소설 「아바이」[1973], 「우정」[1978], 「그날과 밤」[1991] 등을 발표하였다. 강태수의 시집으로는 1981년 출판된 러시아어 시집 『도중에서』가 있다.

참고문헌
  • 이명재, 『소련 지역의 한글 문학』(국학자료원, 2002)
  • 김필영,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1937~1991)』(강남대학교 출판부, 2004)
  • 이승하,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강태수 시 세계 연구」(『한국문학과 예술』8,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 예술연구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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