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사코프 망향탑

원어 항목명 Памятник на горе Печал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07년 10월 15일
현 소재지 러시아 사할린주 코르사코프시
원어 항목명 Памятник на горе Печали
원어 주소 Приморский бульвар,6,Корсаков,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ь, Россия
영문 주소 Primorskiy bul.,6, Korsakov, Sahalinskya oblast’, Russia
성격 위령탑
재질 스테인레스 강판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 8.4m, 넓이 1.8m
소유자 러시아 사할린주 코르사코프시
정의

2007년 러시아 사할린주 코르사코프시 망향의 언덕에 사할린 한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각탑.

개설

2007년 고국으로 귀환하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사할린 코르사코프시 망향의 언덕에 건립한 조각탑이다. 2007년 11월 9일 제막식을 하였다.

건립 경위

2005년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했던 한국의 한강포럼 회원들과 사할린 우리말 방송국의 김춘자 국장과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위령탑 건설을 추진하게 되었다. 한강포럼은 한국의 경제계 인사를 중심으로 학계, 언론, 문화, 예술계의 인사들과 친목과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1995년에 만들어진 단체이다. 한강 포럼에서 건립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기금 모금에 나섰고, 사할린 동포들도 모금에 동참하였고,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이구홍]의 후원이 이루어져 2억 3천만원의 비용이 모아졌다. 당시 사할린에서 액화가스 비축기지 공사를 하고 있던 대우건설도 탑의 재료가 되는 파이프 라인을 제공하였다. 약 300여 평의 부지는 사할린주 코르사코프시의 겐나디 즐리코(Gennadiy A. Zlivko) 시장이 기부를 하여 마련되었다.

처음 조각 기념탑 옆 바닥에 “배를 세우는 뜻은”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는데, 2015년 정비를 통하여 글과 연혁을 세긴 판의 단을 높였다.

형태

스테인레스 파이프 두 개를 막 출발하려는 배 모양으로 만들어 세웠다. 탑 일대는 검은 대리석 바닥으로 하고, 주변은 나무와 화단을 만들고 주차장 등으로 정비를 하였다.

금석문

배를 세우는 뜻은

1945년 8월, 애타게 기다리던 광복을 맞아/ 동토 사할린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4만여 동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코르사코프 항구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는 일본 국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분들을 내버린 채 떠나가 버렸습니다./ 소련 당국도/ 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도/ 이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이 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하릴없이 빈손 들고/ 민들레 꽃씨마냥 흩날려/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조국이 해방되었어도/ 돌아갈 길이 없어/ 아직도 서성이는 희생 동포들의 넋을/ 조국으로 세계로 자유롭게/ 모시려는 뜻을 모아/ 이 “망향의 언덕”에/ 단절을 끝낼 파이프 배를/ 하늘 높이 세웁니다.

글: 김문환

주관: 한강 포럼 회장 김용원, 건립 추진 위원장 김문환, 간사 박일휴, 위원 박선주, 안충모, 양준호, 홍성부

후원: 대우건설, 재외동포재단, 사할린 우리말방송국

발기인: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 상계동 상신 교회, 서울 남솔 로타리 클럽 김덕길, 김경원, 김복순, 김문환, 김승호, 김영수, 김용원, 김종덕, 김창실, 박경재, 박선주, 박일휴, 신용석, 이기남, 이기응, 이인규, 안충모, 양규모, 양준호, 장창기, 장형식, 전상근, 정영목, 지성한, 주덕화, 표상기, 홍성부

조각: 최인수

제작: 대우건설

부지 제공: korsakov Major. Gennadiy A. Zlivko

의의와 평가

일본의 패전과 러시아 남사할린을 소련이 점령한 이후 소련 점령 지역의 귀환 문제는 소련과 연합국 총사령부와의 협의를 거쳐 진행되었는데, 1946년 미소 송환 협정을 통해 일본인들이 사할린 홈스크와 코르사코프항을 통해 귀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당시 귀환 대상에는 일본군, 포로, 일반 일본인만 있었고 한인은 제외되었다. 일본인의 기준을 일본 호적에 등록된 사람으로 한정한 것이다[한인은 조선 호적을 가지고 있다].

일본인들 귀환 소식에 사할린 각지에서 코르사코프 항구 주변으로 많은 한인들이 모여들었고, 항구가 잘 보이는 이 언덕에서 매일 같이 자신들을 태우고 갈 귀국선을 기다리며 일본인들의 귀환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러한 사연이 깃든 망향의 언덕에 한국과 사할린에서 민간 모금 주도로 한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탑을 세워 큰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사할린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들리는 곳으로 동포들의 아픈 역사를 추념할 수 있게 되어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방일권, 「러시아 지역 사할린 한인 기념 공간의 현황과 과제」(『재외 동포 기념 공간의 기억과 전시에 관한 학제적 담론』, 한일민족문제학회,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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