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한인 희생자 합동 추모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러시아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2015년 8월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5년 3월 17일
현 소재지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제1묘지
성격 추모비
관련 인물 무원 승려[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대표]|현덕수[사할린 한국한인회장]
재질 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3.6m[높이]|1.9m[너비]
소유자 사단법인 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관리자 사단법인 사할린 한인역사기념사업회
정의

2015년 8월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건립된 강제 징용 한인 추모비.

개설

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사할린주 한인협회임용군회장과 사할린 한국한인회 현덕수 회장의 도움으로 일제 강점기 한인 희생자 합동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되었던 희생자들의 고통과 서러움을 기억하고자 만든 합동 추모비이다. 비문은 『군함도』의 작가 한수산이 작성했다.

건립 경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 공동 묘역에는 징용 1세와 그 후대인 2세들이 가장 많이 묻혀 있는 곳이다.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역에는 방문객들이 따로 참배를 할 만한 시설이 없었다. 사할린을 방문한 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관계자들이 합동 추모비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추모비라고 하지 않고 합동 추모비라고 명명한 것은 징용 당사자와 그 후손들이 모두 묻혀 있는 것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8일 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대표인 승려 무원이 러시아 사할린을 방문하여 추모비 건립 추진 의사를 피력하였다. 2015년 2월 소설가 한수산 작가에게 추모비 비문 작성을 요청하였다. 2015년 3월 10일 추모비 제작 의뢰를 하였고, 2015년 3월 17일 소설가 한수산 작가가 ‘추모비 비문’을 완성하였다. 2015년 4월 29일 추모비 제작을 완료하였고, 부산항 선적을 하였다. 2015년 5월 7일 합동 추모비가 사할린으로 출항하여 2015년 5월 13일 사할린에 도착하였다. 2015년 7월 1일 장소 배치도를 제작하였고, 2015년 7월 24일 합동 추모비 부지를 재선정[옛 관리소 건물]하였다. 사할린주 한인협회임용군회장의 도움으로 유즈노사할린스크시로부터 부지를 제공받아 2015년 7월 31일 기초 콘크리트 작업을 하였다. 2015년 8월 5일 합동 추모비 설치 공사를 시작하여 2015년 8월 6일 합동 추모비 공사를 완료하였다. 2015년 8월 11일 합동 추모비 제막식 및 위령제를 개최하였다.

위치

일제 강점기 한인 희생자 합동 추모비는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제1 공동 묘역[Старое Кладбище]에 있다.

형태

연꽃 모양 2단 받침대 위에 비가 있고, 비석의 상단에 지붕 모양의 갓을 올렸다. 높이 3.6m이며 밑받침[기단석] 0.3m, 밑단 장식 0.9m, 비석 1.8m, 갓 0.6m이다. 너비는 밑받침[기단석] 1.9m, 본체 1.5m이다. 중량은 8톤이다.

금석문

〈비문 앞면〉

떠나온 고향이여, 돌아갈 수 없던 조국이여/ 그리움은 흘러 몇 구비/ 흐르는 것이 어찌 강물뿐이더냐/ 잊지 않고 간직했던 고향 주소여,/ 베갯머리 적시던 고향 생각은 꿈길이 아니라 꽃길이었네/ 조국에 잊히고 시대에 뒤엉키며/ 역사의 비극을 온 몸으로 견디며 살아온 세월/ 고난 가득한 삶에도/ 눈물은 세월과 함께 마르고, 고통의 밤에도 새벽은 밝았다/ 고난을 넘어 왕생한 길/ 생명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다, 이제 여기 묻히니/ 부디, 잊지 말라/ 기억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비문 뒷면〉

그대여,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여기 묻혀 고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가슴을 기울여라./ 한국 근현대사를 점철하는 비극 가운데서도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그 비극의 원형질이 다르다./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끌려와 혹독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해방을 맞았으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땅에 버려져야 했던 이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신념을 끝내 잃지 않았던 사할린 한인의 슬픈 역사가 여기 서려 있다./ 그들은 이 땅에 살아남았다. 비운의 한걸음 한걸음마다 고통은 켜를 이루었지만 통곡을 희망의 땀으로 견디며…… 풀씨처럼 떨어진 이곳을 가꾸며 뿌리를 내렸다./ 고향의 그리움을 가슴에 묻으며, 내일을 살아갈 자식을 길렀다./ 울지 말라, 어제를 위해 흘릴 눈물은 없다./ 역사에 짓눌리며 조국에 잊혀지고 시대에 뒤엉키며 살아온 세월의 장엄함이여, 고난을 넘어 왕생한 그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가슴 깊이 간직해 온 고향 주소를 차가운 빗돌 속에 새기며 잠든 이름, 이름들. 민족사의 강줄기를 풀잎처럼 떠내려가며 온몸으로 살다간 이들을 기억하면서, 여기 이 비를 세운다.

작가 한수산 짓다./ 합동 추모비 건립 위원 (사)부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 대표 무원 스님/ 상임 공동 대표 조기종, 공동 대표 백승용, 차상조, 윤정미, 권기재, 박명숙/ 상임 위원 황선희, 운영 위원 명성학, 사무총장 리인수, 홍보실장 정수진/ 사할린 한국한인회장 현덕수/ 삼광사 신도회장 이헌승, 부회장 최주덕/ 외교부 사할린 출장소장 사공장택/ 부산광역시 교육감 김석준/ 무학그룹 회장 최재호/ 믿음교회

의의와 평가

러시아 사할린주의 주도인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제1 공동 묘역에는 1,596기의 한인묘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할린 한인문화센터 앞 2개의 위령탑과 코르사코프 망향탑 등 추모시설이 있지만, 제1 공동 묘역에도 추모비를 추가 건립하였다. 일제 강점기 한인 희생자 합동 추모비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인묘가 많이 있다. 역설적이게 이곳은 일본인 위령비 근처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 공동 묘지 ‘한인묘’ 실태 조사 보고서』(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2011)
  • 한수산, 「동토의 민들레, 사할린 동포(1) 사할린 한인 묘지 조사 현장을 가다」(『동아일보』, 2011. 8. 1)
  • 한수산, 「동토의 민들레, 사할린 동포(2) 유족과 함께 돌아본 아픈 삶의 자취」(『동아일보』, 2011. 8. 2)
  • 한수산, 「동토의 민들레, 사할린 동포(3) 한인 1세들 고난의 역사」(『동아일보』, 2011.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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