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살자 27인 추념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비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포자르스코예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96년 8월 3일
현 소재지 러시아 사할린주 포자르스코예
성격 한국인 피살자 27인 추념비
양식 비석의 끝이 둥글게 처리된 석비
관련 인물 이용택
재질 오석
관리자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시 한인회
정의

1996년 8월 3일 해외 희생동포 추념사업회가 러시아 사할린주에 건립한 추념비.

개설

러시아 사할린주 미즈호[현재 포자르스코예]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본 민간인들에 의한 한인 학살 사건을 추념하기 위해 건립한 비이다.

과거 일본에 속해 있던 시기 포자르스코예 마을은 1940년대 250호까지 규모가 제법 늘어난 곳이었다. 포자르스코예 마을의 조선인들은 일본인 농가의 소작인이거나, 공사나 계절농을 목적으로 한 임노동자들이었다.

1945년 8월 20일 소련군은 17척의 함선과 다섯 척의 수송선, 80기의 태평양 전투 비행대, 병력 3,200명을 사할린 홀름스크[마오카]에 상륙시켰다. 미즈호 마을의 일본인들은 코르사코프로 피난가기 시작하였지만 조선인들은 남겨 두었다. 일본인들은 침통한 분위기로 일본이 패전했다는 것과 소련군의 진격에 대해 걱정하면서 마을을 떠났다. 그 와중에 “조선인들이 소련의 스파이다.”라는 소문도 돌았다.

마을에 남아 있는 일본인들은 예비군 훈련에 동참했던 재향 군인회와 마을 청년단 소속이었다. 준군사 조직이었던 이들 단체들을 중심으로 의용 전투대가 결성되었고, 지도급 인물들에 의해 ‘상부의 지시’라며 조선인 살해 명령을 집단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한 마을에서 서로 알고 지냈던 조선인들[여성과 6명의 아이들이 포함된 총 27명]을 일본 군도와 죽창 등으로 살해하였다. 8월 20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이 학살 행위로, 사실상 마을에 있었던 조선인 전체가 몰살되었다. 일본 관동 대지진 때 벌어졌던 조선인에 대한 학살처럼 일본은 자국이 패전했다는 집단적 불안감과 공황 상태를 극복할 상대로 조선인을 지목한 것이다.

이 조선인 살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는 조선인의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소련군 정치부 소속 중위로 사할린에 들어온 고려인 허봉득이 조사 요청을 받아 정치부에 이를 보고하여 조사가 실시되었다고 한다[다른 증언에서는 홀름스크시에 교사로 들어온 고려인을 통하여 조사를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소련 법정은 재판을 통해 이 사건을 ‘18명의 일본인으로 구성된 테러 그룹이 미즈호 마을 조선인 주민 27명 전원을 학살’한 범죄로 규정하고 이들 가해자들에 대해 7명은 사형을, 11명은 10년형을 구형했다. 7명은 1947년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형이 집행되었고, 10년형을 구형 받은 일본인들 중 일부는 일본인 송환 시기에 일본으로 돌아간 것이 확인되었다.

건립 경위

1977년부터 사단 법인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의 회장을 맡은 이용택 회장은 러시아 사할린, 중국 용정, 사이판 티니안 등지에서 추념비 건립과 위령제 개최 등 추념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는 러시아 사할린 한인 문화 센터 마당에 있는 사할린 희생 사망 동포 위령비[1992년 건립]와 한국인 피살자 27인 추념비[1996년 건립] 건립에 참여하였고, 매년 사할린 추념 행사[2016년까지 23회]를 진행하고 있다. 2012년에는 한국의 로타리 클럽[3730지구]과 러시아 유즈노사할린스크시 로타리 클럽, 러시아 사할린주 두마 의원 정 발레리[동포] 의원 등의 도움으로 바닥에 보도블럭 깔기, 계단 만들기, 식목 등 주변 정비를 하였다.

위치

한국인 피살자 27인 추념비는 러시아 사할린주 홀름스크시로부터 내륙으로 40㎞ 떨어진 사할린주 포자르스코예 마을에서 약 2㎞ 떨어진 도로변에 있다.

형태

오석으로 만든 윗면이 둥글게 처리된 비석이다.

금석문

비석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5년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뽀쟈르쓰코에에서 일본인들이 제2차 세계 대전에 패망한 분풀이로 곧 진주할 소련군에 협력하여 일본인들에게 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27인을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을 기억하며 희생당한 동포 영령들을 위령하기 위해 비를 세운다. 우리 모두 과거를 영원히 기억하고 전쟁의 허망을 깨닫고 인류 평화를 애호하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다.

서기 1996년 8월 3일

대한민국 사단법인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회장 이용택 외 회원 일동.

의의와 평가

미즈호촌 학살 사건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까지 이루어진 드문 경우에 속한다. 전쟁 시기 희생자에 대한 기념 사업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할린에는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서 아직도 진상 규명이 필요한 목격담들이 많이 있다. 꾸준한 조사와 기록 작업이 필요하다. 2017년 사할린주 한인협회는 도로 입구에 입간판을 설치하여 출입을 용이하게 하는 한편, 미즈호촌 학살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상영히를 개최하였다.

참고문헌
  • 『사할린 미즈호 조선인 학살 사건 진상 조사』(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2008)
  • 꼰스탄찐 가뽀넨코, 『사할린 미즈호 마을의 비극』(장한나 옮김, 새문사, 2015)
  • 최상구, 『사할린, 얼어붙은 섬에 뿌리내린 한인의 역사와 삶의 기록』(일다, 2015)
  •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http://cafe.daum.net/Korea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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