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 항목명 | Сучанский Партиза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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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원어 항목명 | Сучанский Партиза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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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콜호즈 |
한인 사회에서는 농업 이외에 어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1924년 연해주에는 5개의 어업 동업 조합이 있었고, 1926년에는 7개가 있었다. 1927년 한인 어업 인구는 전체 관구에서 대략 3,000명이었다. 그중 1926년 1월 1일 940명이 39개 어업조합을 통해 집단화되었다. 1927년 7월 1일경에는 1,182명이 52개 조합을 통해 집단화되었다. 이 숫자는 연해주 어업산업조합(Примпромыбаксоюз) 구성원의 40%, 그리고 하부 구조를 구성하는 조합 총수의 41.2%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1930년 초 한인 어업 집단 농장은 대략 2,000가구, 5,000명의 어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수찬빨치산은 규모가 큰 한인 어업 집단 농장 중 하나였다.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면서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