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부터 ‘극동의 쌀’에서는 ‘산타헤자 실험 및 토지개량연구소’가 설립되어 운영되었다[산타헤자는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마을이며, 1970년 노보셀스코예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28년에는 벼농사 연구를 위한 실험 연구소가 설립되었다. 1929년에 쌀농사 발전 5개년 계획이 수립되었고, 계획에 따라 연해주의 쌀 경작 면적은 39,000㏊[390,000㎢] , 쌀 수확량은 115,000톤까지 늘리기로 예정되었다.
참고문헌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부가이 니콜라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재러 한인 이주사』(김광환·이백용 옮김, 시대정신, 2004)
반병률, 「‘전면적 집단화’ 시기 러시아 연해주 수청 지방 한인 농촌 사회의 제문제」(『역사문화연구』3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