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로 수호 통상 조약

한자 韓露 修好 通商 條約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조약과 회담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체결|제정 시기/일시 1884년 7월 7일
정의

1884년 러시아와 조선이 최초로 맺은 조약.

개설

조선과의 외교 관계에 소극적이던 러시아가 조선이 미국, 중국, 영국, 독일과 차례로 조약을 맺자 관심을 가지고 조선과 체결한 통상 조약이다.

체결 경위

조선의 개방에 반대하던 러시아는 1882년 5월 중국 정부의 주선으로 조선과 미국이 조약을 체결하고, 영국 등 다른 열강도 조선과의 조약을 준비한다는 것을 파악하자 조선과의 조약 체결에 관심을 가졌다. 1882년 7월 러시아는 조선과의 조약을 준비하기 위해서 천진 주재 러시아 영사인 베베르를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했다. 베베르는 조선과의 조약 체결에 대한 전권을 위임 받았고 협상을 위한 준비를 마쳤지만, 임오군란 발발로 서울 파견이 연기됐다. 이후 러시아는 조선이 영국, 독일과 조약을 맺는 과정을 지켜보며 조약 체결 시기를 조율했다. 조선이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자,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조선과의 조약 체결에 나섰다. 조선 정부도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조선의 자주 독립을 확고히 하기 위해 러시아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1884년 7월 7일 서울에서 베베르와 조선의 외무장관 김병시가 한로 수호 통상 조약 체결에 합의했다.

조약/회담 내용

한로 수호 통상 조약은 한영 수호 통상 조약(韓英修好通商條約)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영 수호 통상 조약과 달리 상호 영사 파견 조항이 삭제되고, 외교 대표부는 다른 국가의 영사관이 주재하는 개항장에만 설치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 조항은 조선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영사관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로 수호 통상 조약에는 기본적으로 다른 자본주의 열강들과 맺은 조약과 마찬가지로 영사 재판권 보장, 관세 자주권 상실, 최혜국 조항 등 불평등 조약의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특기할 만한 것은 러시아 군함에 대한 조항이다. 러시아 군함은 개항장뿐만 아니라 어느 항구에든 자유롭게 입항할 수 있으며, 군함의 수리나 보급의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육로 무역과 관련한 내용은 한로 수호 통상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다.

결과

조선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서양 열강들과 조약을 체결했다. 한로 수호 통상 조약은 다른 제국주의 열강과 맺은 조약과 마찬가지로 불평등 조약이었지만,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조선 정부의 노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조선과 러시아는 중국의 견제 등으로 육상 무역에 대한 내용을 한로 수호 통상 조약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결국 조선과 러시아 사이의 육로 무역에 대한 것은 1888년 조러 육로 통상 장정(朝露陸路通商章程)을 통해 해결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로 수호 통상 조약은 한국과 러시아가 최초로 맺은 조약이었고, 러시아의 이해 관계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불평등 조약이었다.

참고문헌
  • 민경현,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조선 정책과 조러 수호 통상 조약」(『대동 문화 연구』61, 성균관 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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