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참변

한자 沿海州 慘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20년 4월 4일
발단 시기/일시 1920년 3월 12일
정의

1920년 4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우수리스크에서 일본군이 한인을 학살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17년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에서 내전이 발발하고 뒤를 이어 외국 군대의 무력 간섭이 시작되었을 때 재러 한인들은 소비에트러시아를 위해 싸웠다. 1918년 일본군은 러시아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거류민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했다. 1918년 7월 미국, 영국 및 프랑스, 이탈리아가 진주하기로 결정하였다. 1918년 9월 연해주의 소비에트 정권 붕괴와 외국 간섭군의 원동 전 지역의 점령에 대항해 빨치산 부대들이 지방 전역에서 조직되었다. 재러 한인들도 빨치산 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 1919년~1920년 초 소비에트러시아는 백군과 외국 간섭군과의 전쟁에서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콜차크 정부의 붕괴는 미국, 영국, 프랑스로 하여금 자국 군대를 러시아 원동 지역으로부터 철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원동에 주둔하던 175,000명의 11개 보병 사단으로 원동 지역 점령을 시도하였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완충 국가를 만드는 방법을 선택하여 1920년 4월 바이칼에서 태평양 지역에 이르는 극동 공화국[원동 공화국]의 창건을 발표하였다.

경과

일본군은 1920년 4월 5일 새벽 5시 재러 한인 혁명 운동의 중심지인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을 포위하고 건물과 도주하는 사람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경비 업무를 수행하던 한인 중대 50명을 무장 해제시키고 사살했으며, 한인들을 학교에 가두고 문을 잠근 다음 방화를 해 학살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러시아 내 한인 민족 운동의 지도자 최재형을 비롯하여 김이직, 엄주필, 황경섭 등 한인 민족 운동가들이 살해당했다. 빨치산과 민간인에 대한 일본군의 토벌 작전으로 희생된 재러 한인은 대략 5,00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결과

일본은 재러 한인들의 빨치산 운동을 금지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지만 1920년 4월 참변 이후 원동에서 재러 한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빨치산 부대들은 더욱 거세게 항일전을 전개하였으며, 러시아 연해주와 러시아 연흑룡주[극동 공화국의 지역 명칭으로 현재의 사할린주와 연해주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 지역에 36개 부대, 대략 3,700명의 빨치산 부대가 활동했다.

의의와 평가

러시아 원동 지역의 외국 간섭군에 맞서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러시아와 국제적 차원의 항일전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 박 보리스 드미트리예비치·부가이 니콜라이, 『러시아에서의 140년간-재러 한인 이주사』(김광환·이백용 옮김, 시대정신, 2004)
  • 반병률, 『여명기 민족운동의 순교자들』(신서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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