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회당 적위군

한자 韓人社會黨赤衛軍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하바롭스크지방 하바롭스크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8년 7월
해체 시기/일시 1918년 9월
정의

1918년 러시아 연해주 하바롭스크시에서 조직된 한인사회당 중심의 재러 한인 최초 무장 부대.

개설

국권 상실 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이 반제, 반일을 목적으로 러시아 연해주에서 러시아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과 합동으로 조직한 재러 한인 최초의 무장 부대이다.

설립 목적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대한 공동 대책과 이를 통한 항일전을 전개하여 독립을 쟁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한인사회당은 군사부장인 유동열을 교장으로 하여 장교 훈련을 위한 군사 학교를 설립했다. 김 알렉산드라를 중심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주둔 일본군 병사들을 상대로 반제, 반전 사업을 전개하면서 적위대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8년 4월 5일 일본인 2명이 살해된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육전대를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시키자 크라스노쉐코프와 이동휘한인사회당 간에 일본의 시베리아 출병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 대책이 논의되었다. 이에 따라 동년 7월 한인사회당 적위군이 조직되었다. 원동인민위원회의 승인과 지원 아래 하바롭스크, 이만, 노령과 중국 국경지대 니콜스크우수리스크, 바라바시, 연추 등 각지에 이동휘, 유동열, 김립, 이한영 등이 활발한 적위대 모집을 전개하여 100여 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당 적위군을 결성하였다. 러시아 적위군과 함께 백위파 카르미코프 군대와 무력 간섭군에 맞서 뱌셈스크, 크라스나야, 레츠카 등 하바롭스크 방위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만 전투에서는 유동열, 전일이 지휘관으로 활약했으며, 30여 명이 전사하였다. 한인사회당 적위군은 하바롭스크가 백위파군과 무력 간섭군에게 점령되면서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한일 병탄 후 러시아 지역 최초로 항일전을 전개한 재러 한인 무장부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한인사회당 적위군은 독자적인 별도의 부대가 아니라 볼셰비키당과 노농소비에트의 지도 아래 합동 민족 부대로 조직되었다. 한인을 비롯하여 러시아인, 중국인, 헝가리인, 세르비아인, 라트비아인 등 여러 민족이 참여하였다. 반제 반일을 중심으로 국제적 차원의 연대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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