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학교

한자 韓民學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개교 시기/일시 1909년 10월
폐교 시기/일시 1937년
최초 설립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성격 학교
설립자 이종호|김학만|신한촌민회
정의

1908년 10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에 설립된 재러 한인 학교.

개설

1908년 8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계동학교, 세동학교, 신동학교 세 학교를 합쳐서 재러 거류민회 차원에서 한민학교를 설립하였다.

변천

1909년 러시아 당국의 인허가를 받지않은 한인 학교의 폐쇄 조치 결정으로 한인학교가 폐교될 위기에 놓이자 8월 한민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시립 학교가 되었다. 러시아명 제28 소학교로 변경되었고, 교수 용어는 러시아어가 사용되었다.

교육 활동

한인들은 학교 유지를 위해 ‘해삼위 한인 거류민의 교육비에 대한 입약서’를 만들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왕래하는 한인들, 거주하는 한인들, 취학 아동을 둔 부모들에게서 일정 금액을 기부받아 운영 재정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재정이 확보되자 블라디보스토크시한민학교에 인허가를 내주었다. 1909년 10월에 개설하고 교장에 김학만이 임명됐다. 첫해 남녀 학생이 81명으로 이전 계동학교보다 학생 수가 증가하였다. 러시아 당국에 의해 개척리에서 신한촌으로 한인 마을이 옮겨지면서 한민학교신한촌으로 이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주 교구 지도부는 신한촌에 건물을 지어 교회와 학교를 겸하게 하였는데 교회 이전 비용은 최봉준과 러시아 정교회에서 기부하였다. 페테르스부르크[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언을 남기고 순국한 이범진이 1,000루불을 기증했다. 1911년 8월 이종호와 신한촌민회가 재정을 부담하여 마을 중심부에 한민학교 건물 신축 공사에 착수했다. 학교 현관의 상부 좌우에 태극기를 조각해 놓은 신축 건물은 대략 100여 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었다. 1912년 포드스타빈이 교장으로 재직하고 이상설이 학감으로 임명되었다. 1919년까지 김진, 김하구, 강구리, 김철훈 등이 교사로 근무했다.

한민학교는 초기에는 신한촌민회가 운영하다가 1914년 3월 신한촌민회와 권업회권업회로 통합되자 권업회 직속 학교로 바뀌었다. 4학년제로 3과[심상, 고등, 중학]이 운영되었으며, 교육 과정은 심상 소학과 고등 소학 정도를 같이 가르쳤으며, 러시아어 교사와 국학문 교사를 초빙하였다. 성경, 윤리, 국어, 외국어, 수학, 역사, 창가, 체육의 기초 과정과 각 학년마다 각기다른 실업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였다. 1914년에는 러시아 교육 과정에 맞추어 교육을 했으며, 개항기 교과서를 사용하였다.

교가와 상징물

태극기

현황

1937년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로 폐교되기 전까지 많은 학생을 배출하였다.

참고문헌
  • 이경숙, 「블라디보스토크 한인학교의 변동, 1905~1922」(『정신문화연구』34, 한국학중앙연구원, 2011)
  • 『러시아 지역의 한인 사회와 민족 운동사』(교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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