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3월 15일
최초 설립지 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
정의

1921년 러시아 아무르주 스보보드니시[당시 자유시]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무장 독립 군단.

개설

1920년대 말부터 1921년 초에 걸쳐 간도로부터 연해주 이만으로 옯겨 온 독립군 부대들은 신민단한인사회당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연해주 자유시[알렉세옙스크, 지금의 스보보드니]로 집결하였다. “인민혁명군 안에 있는 모든 한인 부대를 특립 사할린 부대로 재조직”하라는 원동공화국의 인민혁명군 총사령관 에이헤의 명령에 따라 결성된 한인 무장 부대이다. 1921년 3월 15일 연해주와 서북간도에서 이동해 온 한인군대 대표자들이 참석한 전한의병대회가 주둔지 마사노프에서 개최되어 ‘전한군사위원회’와 ‘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가 조직되었다. 한인 부대들은 모두 그 휘하에 직속되었다. 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사할린 부대, 사할린 특립의용대, 사특의용군[사할린 특립의용군], 대한의용군으로 불렸다.

설립 목적

한인 무장 부대의 통합과 최고 지도 기관 설립을 위해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간도로부터 한인 무장 독립 부대들이 이동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무르주는 연해주와 달리 백위파군을 후원하는 일본군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원동공화국 관할의 ‘해방 지구’였다. 둘째, 소비에트 정부와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 특사 한형권 사이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아무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 무장 세력들을 통합한 단일 체계의 최고 지도 기관 및 군단을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노령 지역의 이만 군대, 다반 군대, 독립단부대, 사할린 군대, 학생대, 자유대대와 중령 지역 총군부, 국민회군대, 독립군, 북로군정서, 서로군정서가 집결했으며 총병력은 대략 1,900명이었다. 1920년 10월 14일 자유시에서 사할린 군대의 박일리야와 자유대대 사이에 지휘관 회의가 열렸다. 자유시에 근거한 자유대대대한국민의회의 정치적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하였고, 박일리야는 아무르주 한인공산당의 지휘를 받을 것을 주장했다. 박일리야는 무장 부대 통합 문제를 러시아 공산당 원동국 한인부와 토의하기 위해 치타로 갔다. 치타에서 한인부와 박일리야는 수차례 회의를 통해 전한의병대회를 개최하여 한인의병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였다. 1921년 3월 15일 연해주와 서북간도에서 이동해 온 한인 군대 대표자들이 참석한 전한의병대회가 주둔지 마사노프에서 개최되어 ‘전한군사위원회’와 ‘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가 조직되었다.

의의와 평가

소비에트 러시아와 상해 임시 정부의 국제적 연대 속에서 간도와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 부대들을 통합하여 단일 지도 체계의 대규모 군단을 조직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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