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대

한자 忠義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노보키예프스크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03년
해체 시기/일시 1908년
성격 의병 부대
설립자 이범윤(李範允)
정의

1903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이범윤이 조직한 재러 한인 의병 부대.

개설

충의대는 간도관리사로 임명된 이범윤(李範允)이 러시아 연해주 노보키예프스크를 중심으로 조직한 의병 부대이다. 충의대는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한편, 1904년 러일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군과 합세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

설립 목적

이범윤은 청의 비적들로부터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의 재산과 생명 등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종의 사병 집단인 사포대(私砲隊)를 편성하여 충의대라 불렀다.

변천

1903년 8월 간도관리사에 임명된 이범윤은 곧바로 산포수와 장정들로 1,000여 명 규모의 충의대를 조직하였다.1904년 2월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함경도 무산, 회령, 종성, 온성과 간도의 양수천자, 화룡, 6도구 부근에 충의대 연병장, 모아산, 마안산, 두도구 등지에 충의대 병영을 각각 수축하고 서울에서 총기와 탄약을 들여와 군사 훈련을 했다. 충의대는 1905년 7월 러시아의 아니시모프 장군 부대와 연합하여 함경북도에 침입한 일본군과 교전하여 일본군 30여 명을 살상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700여 명의 충의대를 이끌고 이범윤은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1906년 충의대는 노령 연추(煙秋)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최재형(崔在亨)의 도움으로 항일 단체인 동의회(同義會)창의회(彰義會)를 결성하여 의병 부대의 인적, 물적 기반으로 삼았다. 1908년 충의대최재형의 의병 부대와 연합하여 4,000여 명에 달하는 ‘연추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매 20호마다 포수 한 사람을 뽑고 매 5호마다 포병 한 사람을 거두어 부대를 조직하였으며, 영장(領長), 부영장 이하 검찰, 참리(參理) 등의 간부를 두어 부대를 운영하였다. 병사는 약 700여 명이었고, 이범윤최재형의 후원으로 직접 연해주 각지를 순회하여 한인들에게서 의병의 소모와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연해주에서는 마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민간인이 총기 소유를 하고 있었으며, 총기, 탄약의 매매도 원래 허가제였으나 연추에서는 사실상 자유로이 매매되고 있었다. 따라서 의병 부대의 무기와 장비를 러시아 군인들로부터 저가로 구입하거나 한인 사회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었다. 무기의 주종은 러시아제 5연발총, 14연발총으로 국내 의병들의 화승총에 비해 성능이 우수하여 높은 전투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의의와 평가

충의대는 청의 비적을 소탕하였고 재러 한인의 생명, 재산 등 권익 보호와 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 연구』(한울, 1998)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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