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彰義會 |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 |
설립 시기/일시 | 1908년 |
---|---|
해체 시기/일시 | 1909년 7월 이후 |
성격 | 의병 단체 |
설립자 | 이범윤 |
1908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의병 단체.
창의회는 연추에 중앙 본부인 사무소를 설치하고 상주 인원을 두어 의병 사무 일체를 담당하게 했다. 연추에 설치한 창의회 사무소는 창의대 총영소 혹은 창의소 등으로 불렸다. 사무소는 이범윤이 총괄하고 이승호가 실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창의회의 실무는 1909년 이승호와 홍범도 두 사람이 나누어서 하게 된다.
이범윤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유인석(柳麟錫) 등과 공동 전선 구축을 협의하는 한편 1909년 7월 정예 병력 200명을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함경북도 경원의 신아산(新阿山)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전멸시켰다. 또한 회령의 영산(永山) 등에서도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후 지도부 내부의 알력과 투쟁 방법의 차이 등이 나타나면서 창의회의 활동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최재형이 이범윤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되면서 창의회는 해체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최재형과 엄인섭 등은 동의회(同義會)를, 이범윤은 유인석, 차석보(車錫甫)와 함께 성명회(聲明會)를 조직해 각각 항일 운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