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군사위원회

한자 全韓軍事委員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3월 중순
해체 시기/일시 1921년 6월
성격 군사 단체
정의

1921년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무장 독립운동 부대의 통합체.

개설

치타 한인부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를 중심으로 연해주와 간도에서 활동하던 무장 부대를 통합하여 관리할 군사 조직 결성이 논의되었다. 치타 한인부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의 무장 조직 통합 움직임은 1921년 3월 마자노프에서 열린 전한의병대회를 개최하고, 새로운 군사 단체로 전한군사위원회를 조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한군사위원회극동공화국의 지원 속에서 연해주와 간도의 무장 부대 통합을 시도했으나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에 의해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가 만들어지면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설립 목적

치타 한인부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연해주와 간도에서 활동하던 무장 부대들을 통합하고 관리할 통합적인 군사 조직을 결성하는 데 합의했다.

변천

치타 한인부연해주와 간도에서 활동하는 무장 조직을 통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계획의 실행을 위해 먼저 박일리야의 니항(尼港) 부대를 중심으로 연해주 지역의 한인 빨치산 부대를 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로 통합했다. 이후 치타 한인부특립 사할린 빨치산부대극동공화국 정부와 협의하여 1921년 3월 1일 전한의병대회 개최를 결정했다. 1921년 3월 1일에 열린 예정이었던 전한의병대회는 실제로는 3월 중순 러시아 마자노프에서 개최되었다. 1921년 3월 중순에 열린 전한의병대회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지역에 수 만의 의병 부대를 통합시켜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격파하기 위한 통합적인 군사 조직으로 전한군사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전한군사위원회의 군사위원으로는 이용, 채영, 한운용, 장기영, 박일리야 등 5명이 선임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전한군사위원회는 설립 당시 자유시로 모여든 연해주와 간도의 대부분의 무장 부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전한 의병 대회의 개최와 함께 결성된 전한군사위원회는 마자노프에서 간도와 연해주에서 이동해 온 한인 무장 부대를 통합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1921년 5월 코민테른 극동비서부가 조직되고, 코민테른 극동비서부를 중심으로 한인 무장 부대를 통합할 조직으로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가 결성되자 전한군사위원회의 무장 조직 통합 작업은 난관에 부딪쳤다.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는 전한군사위원회를 통합하려고 했고 이에 전한군사위원회는 반발했다. 임시고려혁명준정의회와 전한군사위원회의 갈등은 이르쿠츠크 그룹을 지지하는 무장 부대와 한인사회당을 지지하는 무장 부대 간의 차이에도 영향을 끼쳤다. 임시고려혁명군정의회와 전한군사위원회의 대립은 결국 1921년 6월 자유시 사변을 통해 전한군사위원회가 해체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의의와 평가

연해주와 간도에서 활동하던 무장 부대들을 통합시키려는 전한군사위원회의 활동은 코민테른의 개입과 한인 무장 부대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자유시 사변이라는 무력 충돌로 종결되었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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