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호한인부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4월
해체 시기/일시 1919년 9월
성격 군사 단체
정의

1919년 4월 대한국민의회 주도로 세묘노프 군대 안에 조직된 재러 한인 부대.

개설

1918년 미하일 원은 치코군 사령관 호르바트의 후원을 얻어 조선국민대대를 결성했다. 대한국민의회는 조선국민대대를 대한국민의회의 항일 무장 조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대한국민의회의 계획과 한인 민족 운동에 호응하는 사람들은 미하일 원의 조선국민대대와 별도의 군사 조직을 만들었고, 에호한인부대로 불렸다. 에호한인부대중동 철도의 에호역에 주둔하며 한인 청년들에게 군사 교육을 시키고 후일 조선 국내로 진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해체됐다.

설립 목적

제정 러시아 군대의 소위였던 미하일 원은 체코군 사령관 가이다와 호르바트의 부대 산하에 조선국민대대라는 한인 부대를 조직했다. 조선국민대대의 목적은 자신들을 길러준 러시아에 보답하기 위해 ‘과격파 군대’, 즉 적군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한편 대한국민의회에서도 한인 빨치산 부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무장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변천

조선국민대대를 무장 조직으로 이용하려는 대한국민의회의 계획은 실제로 진행되지 못했다.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것은 김하석(金河錫)대한국민의회 군무부장 대리를 맡으면서부터였다. 김하석은 한인 청년들을 중동철도수비대에 편입시켜 군사 경험과 무장을 갖추게 한 후 국내로 진출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조선국민대대의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던 미하일 원은 자신의 부대를 한인 민족 운동에 가담시키는 것을 반대했다. 결국 대한국민의회와 관계가 있고 한인 민족 운동에 관심을 가졌던 표트르 김을 중심으로 한 한인들은 미하일 원의 부대와 분리되어 1919년 4월 별도의 한인 부대를 편성했다. 이 부대가 에호한인부대이다. 에호한인부대에는 철혈광복단원들과 조맹선의 독립단부대원들도 가담했다. 또한 귀화한 한인뿐만 아니라 귀화하지 않은 한인들도 입대할 수 있었다. 이런 세력들이 모인 에호한인부대의 규모는 400~500명 정도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18년 하얼빈에서 결성된 미하일 원의 조선국민대대는 중동철도 후방 경계 임무를 맡고 있었다. 이후 대한국민의회가 개입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에호한인부대중동 철도 에호[掖河]역에 주둔하였다. 에호한인부대 설립 계획을 주도한 김하석중동 철도 백군 사령관 호르바트로부터 후원을 받아 에호한인부대에 참가한 한인 청년들에게 군사 교육을 시키고, 이후 조선 국내로 침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에호한인부대가 한 것은 중동 철도와 백군의 군수 물자를 수비하는 임무였다. 당시 백군의 군수 물자는 대부분 일본군이 제공한 것으로, 에호한인부대의 수비 임무라는 것은 결국 일본군이 제공한 군수 물자를 빼앗으려는 러시아 빨치산과 한인 무장 부대들을 막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에호한인부대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군사교육을 제대로 받는 경우가 드물었으며, 대부분 노역에 종사했다.

의의와 평가

에호한인부대김하석대한국민의회가 주도적으로 설립하려고 했던 군사 조직이었다. 에호한인부대는 백군의 힘을 이용해서라도 항일 무장 투쟁을 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민족 해방 운동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에호한인부대는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고 해체되면서 대한국민의회는 물론 연해주 한인 민족 해방 운동에도 큰 손해를 입혔다.

참고문헌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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