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삼도의군

한자 十三道義軍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우수리스크시  
시대 근대/개항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6월
최초 설립지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설립자 유인석|이상설|이남기|이범윤|홍범도|이진룡|이갑 등
정의

1910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에서 유인석, 이범윤, 이상설, 홍범도, 이진룡, 이갑 등이 결성한 항일 의병 부대.

개설

1907년 정미조약 체결이후 국내에서 일어난 의병 운동 세력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국외에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건설하기 위해 연해주로 망명하였다. 이에 유인석, 이범윤, 이상설, 홍범도, 이갑 등은 항일 운동 세력을 통합하여 십삼도의군을 창설하였다.

설립 목적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산발적이고 분산적인 여러 갈래의 의병 부대 통합과 항일 독립운동을 창설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십삼도의군은 1910년 6월 우수리스크 부근의 추풍 재피거우에서 결성되었다. 실제 전투력을 지녔던 창의군과 장의군으로 편제되었다. 이범윤이 창의군 총재, 경성 출신 의병인 이남기가 장의군 총재로서 각 도총재 유인석의 지휘를 받았다. 이상설은 외교 통신원으로 십삼도의군의 사무와 조직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책임을 담당했다. 도총소참모에 우병렬, 도총소의원에 홍범도·이진룡 등의 의병 운동 세력이 대거 참여하였다. 또한 이갑 등 구한말 연해주로 망명한 애국 계몽 운동가들이 참여했다. 십삼도의군의 활동 기간은 8월 국치까지 2~3개월이었지만 당시 민족 운동선상에서 상호 대립 혹은 갈등 상황에 있던 의병과 애국 계몽 운동 세력이 합일, 공동 전선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기간에 유인석이상설은 대규모 항일전을 전개할 계획하에 고종에게 연명 상소를 올려 내탕금을 군자금으로 지원해 줄 것과 연해주로의 파천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일제는 블라디보스토크가 항일 투쟁지로 변할 것을 우려해 러시아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고 항일 운동가들의 체포, 인도를 요청하였다. 또한 무력 투쟁을 본격적으로 개시하기 전에 국권 피탈로 인해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으며, 결국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항일 운동에 있어 노선과 방법을 달리하던 의병 운동과 애국 계몽 운동의 협력, 공동 전선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의의가 있다. 십삼도의군은 비록 뚜렷한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10여 년간 지속된 항일 의병의 국외 확대화와 국외 민족 운동의 한 연원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참고문헌
  • 『한국 독립운동사 강의』(한울, 2007)
  • 윤병석, 「십삼도의군의 편성에 대해」(『사학연구』36, 한국사학회, 1984)
관련항목
이전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