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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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0년 7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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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러시아 연해주 수이푼 |
1920년 7월 5일 연해주 수이푼 당어자동(唐於子洞) 반송정(盤松亭)에서 연해주 한족공산당연합회(沿海州韓族共産黨聯合會)[일명 솔밭관 한족공산당(韓族共産黨)]이 조직되었다. 정식 명칭은 고려공산당 연해주지방연합총회(高麗共産黨沿海州地方聯合總會)이었다. 솔밭관 한족공산당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1920년 6월 이중집, 이영호, 김동환, 황원오, 최추송, 최찬식 등이 모여 공산주의 단체를 조직할 것과 군대를 편성할 것을 협의했다. 그런데 이들은 이전부터 솔밭관[뽀끄로프구] 지역에서 지방대를 조직하고 있었다. 초기부터 이 부대에 참가했던 이범진의 회고에 따르면 이 지방대는 1918년 말 수이푼구역 여호촌인 신길동(新吉洞)의 청년들이 모여서 조직했다. 조직자는 최찬식, 최형식, 최추송, 송창수, 노재선, 황원오, 이범진 7명이었으며 지도자는 최추송이었다. 이후에 들어온 러시아 공산당원이었던 유진구의 지도로 지방대는 우리동무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1920년에 들어 이중집 등 간도로부터 이동해 온 정치 망명자들과 기존의 지방대가 합세하여 1920년 솔밭관 한족공산당이 창립되었고 이때부터 기존의 우리동무군은 솔밭관 공산당부대로 불리게 되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 주로 공산주의 조직 및 교육 사업과 빨치산 모집을 담당했다. 1919년 말부터 중국 마적 홍후즈들과 잦은 전투를 벌였다. 1921년부터 당의 주의 선전과 선동을 위해 『군성(群聲)』이라는 신문과 『한살림』이라는 잡지를 발간했다. 『군성』은 1922년 4월까지 113호가, 『한살림』은 3호가 발행되었다.
1922년 4월 솔밭관을 공격한 일본군에 맞서 전투를 벌였다. 6월 8일에는 포타프카촌의 일본군을, 6월 16일에는 시베창과 재피거우의 일본군을 습격하였다. 7월에는 허커우와 황거우의 일본군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1922년 10월 베르흐네우딘스크에서 통합 당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이중집 등 성원 26명이 연해주 당을 대표하여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