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회

한자 聲明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0년 8월
해체 시기/일시 1910년 9월
성격 독립운동 단체
설립자 십삼도의군의 주요 간부|이상설|유인석
정의

1910년 경술국치에 반대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한 독립운동가들이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조직한 독립운동 단체.

개설

국내외의 의병 통합을 표방하고 편성된 십삼도의군이 항일전을 개시하기 전 일제에 의해 병탄된 상황에서 십삼도의군 간부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한일 합방의 불법성을 알리는 성명회 선언 운동과 부녀자들을 포함한 결사대를 조직하여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무장 독립운동에 앞서 일제의 한국 식민지화 조치에 강력히 항의하고 그 부당성을 세계 만방에 호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10년 8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의 『다리요카야 우크라이나』 신문을 통해 대한 제국 멸망의 비보를 듣고 한인 700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 한인촌[개척리]의 한인 학교에 모여 비상 시국에 대처할 방안을 논의 하였다. 이 모임에서 “대한의 국민 된 사람은 대한의 광복을 죽기를 맹세하고 성취”할 것을 결의하였다. 일본 정부에게는 국제 공약의 배신을 맹렬히 비난하는 공한을 보냈으며, 각국 정부에는 ‘합병 무효’를 선언하는 전보와 8.624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연명한 성명회 선언서를 보냈다. ‘대한일반인민총대 유인석’ 명의로 보낸 성명회 선언서는 이상설이 기초하고 성명회 대표인 유인석이 보완하였다. 원문은 한문으로 작성되었으며, 청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불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해서 보냈다. 성명회는 8월 24일 청년 50명을 결사대로 조직하여 일인 거류지를 습격하였다. 8월 25일에는 부녀자를 포함하여 결사대원은 1,000명으로 늘어났으며 더 격렬한 활동을 하였다. 8월 26일에는 러시아 군경의 감시를 피해 ‘천고재’에서 성명회의 주요 인물 50여 명이 조국 독립의 결의 속에서 독립 전쟁의 방략을 논의하였다. 이범윤은 “두만강의 결빙기를 기다려 의병을 200명 단위의 부대로 편성하여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진입시켜 총 병력 1만 명에 달하면 독립 전쟁을 전개한다.”는 제의를 의결하였다. 이러한 성명회의 활동에 대해 일제는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를 제기하는 동시에 주요 인물인 유인석, 이상설, 이범윤 등의 체포, 인도를 요구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성명회 간부들에 대한 체포령과 함께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연해주 한인의 항일 활동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성명회는 1910년 9월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성명회는 대한제국 멸망과 동시에 일제의 한국 병탄 무효를 선언하는 국제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일본 정부나 각국 공사관에 항의하는 외교적 방략을 모색했다는 점은 수년간 러시아 한인 사회의 축적된 역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러시아 한인 사회의 조국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표출되었으며 이후 시기에도 그러한 역량과 신념이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5(독립유공자사업기금 운용위원회, 1973)
  • 『한국 독립운동사 강의』(한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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