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조선공산당

원어 항목명 Корейская компартия 1951 г.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현대/현대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1년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7월 2일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8월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1년 11월 1일
원어 항목명 Корейская компартия 1951 г.
성격 사회단체
설립자 신준우|신보균 등
정의

1951년 러시아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을 돕기 위해 신준우의 주도로 조직된 비밀 단체.

개설

1951년 마카로프, 고르노자보드스크, 유즈노사할린스크, 네벨스크에서 사할린 한인의 귀환을 돕기 위해 조직되었다. 소비에트 시기 사할린 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귀환’이었다. 대다수 사할린 한인은 자의가 아니라 일본의 강제동원이나 징집에 의해 사할린에 왔기 때문에 가족이 기다리는 귀국에 대한 열망이 강렬했다. 귀환 요구에 대해 소비에트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이와 관련된 자료는 고문서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할린 한인의 귀환을 돕기 위해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었다.

신준우(Син Чун У)는 1927년 전라남도에서 출생했으며 1934년 가족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으로 이주했다가 1943년 일본으로 강제 동원되었다. 이후 일본에서 탈출했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사할린으로 보내졌다. 사할린주 마카로프시에 거주했으며 시민권이나 직업은 없었다. 1951년 7월 ‘반소비에트 민족 단체’를 조직하여 ‘조선공산당’이라고 명명했다. 신준우에 의하면 당의 목적은 일본 정부, 대한민국 정부, 사할린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군사대표부의 도움으로 한국인의 귀환을 돕는 것이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UN의 관심을 촉구할 계획이었다. 이후 북한으로 귀환했다.

신보균은 1931년 마카로프 지역 자오제르니 마을에서 출생했으며 유즈노사할린스크에 거주했다. 6년제 일본 초등학교와 2년제 일본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한인학교 교사로 일을 하려 했으나 시민권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자오제르니 마을에서 전기 수리공, 마카로프 제지 공장에서 화물 운반원, 돌린스크 삼림 콜 호즈에서 회계원으로 근무했다. 1950년 5월 야간 학교 입학을 위해 유즈노사할린스크로 이주했다. 1951년 8월 1일 열차에서 신준우를 만나게 되어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게 되었다.

김영관은 경상북도에서 출생했으나 출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일본식 이름은 가나시사 야시콘인데 네벨스크 시에서 거주했다. 6년제 일본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43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되어 고르노자보드스크, 네벨스크 광산에서 일을 했다. 1947년 9월~10월 신준우를 만났고 이후 신준우가 조선공산당을 조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권명상은 함경남도에서 출생했으나 출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유즈노사할린스크에 거주했다. 1939년 부모님과 함께 사할린으로 이주했으며 이후 한 번도 유즈노사할린스크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일본 초중등학교와 상업대학을 졸업한 뒤 무역에 종사했다. 신준우와는 1950년에 알게 되었으며 신준우가 조선공산당을 조직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1956년 10월 27일 북한으로 귀환했다.

설립 목적

사할린 조선공산당은 일본 정부, 대한민국 정부, 사할린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국 군사대표부, UN의 도움으로 사할린 한인의 귀환을 돕는 것이 설립 목적이었다.

변천

1951년 마카로프, 고르노자보드스크, 유즈노 사할린스크, 네벨스크에 비밀 조선공산당이 조직되었다. 발기인은 고로노자보드스크, 마카로프 한인학교 교사들과 유즈노 사할린스크 출신의 신보균, 네벨스크 출신의 권 모씨였다. 비록 비밀 조직이었지만 반소비에트 활동은 하지 않았고 주된 목적은 사할린 한인의 귀환을 돕는 것이었다. 1951년 7월 2일 마카로프에서 ‘조선공산당’ 1차 대회를 개최했다. 1951년 8월 유즈노사할린스크 기차역에서 신준우가 국가 정보 요원에게 체포되었고 1951년 11월 1일 신보균이 체포되었다. 네벨스크의 김영관, 고르노자보드스크와 마카로프의 한인학교 교사들도 체포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감금되었으며 6년 뒤인 1956년에 석방되었다. 당원들이 모두 체포되면서 사할린 조선공산당은 자연스레 해체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51년 7월 2일 마카로프에서 ‘조선공산당’ 1차 대회를 개최했으며 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신문 편집부를 포함한 중앙기관, 당 소비에트를 선출했다. 사할린 조선공산당은 목적, 과제, 원칙이 분명했다. 조선공산당은 격문, 정관, 기관지 등을 발간했는데 격문은 ‘한국인’, ‘사할린 한국인’, ‘한국 공산주의자’, ‘한국 공산주의자와 소비에트 정권의 과제를 결합하는 문제’, ‘모든 사할린 한인에게 고함’의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사할린 조선공산당에 관한 소식이 다른 도시로 전파되면서 조선공산당은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지만 존속 기간은 매우 짧았다.

의의와 평가

사할린 한인의 특수성을 대중화하고 사할린 한인의 귀환 열망을 결집했으며 사회주의 사상과 민족주의 사상을 결합했다는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Дин Юлия Ивановна,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Сахалина: проблема репатриации и интеграция в советское и российское общество』(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ная типография,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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