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한인민회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  
시대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1년
최초 설립지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
정의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신한촌에서 조직된 한인 단체.

개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민회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된 한인 단체이다. 『해조신문』을 발간하였다.

설립 목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한 한인과 러시아 지역의 토착 세력이 중심이 되어, 국권 회복을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신문, 잡지 등을 간행하고자 조직한 단체이다.

변천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민회『해조신문』을 간행하였다. 『해조신문』은 1908년 4월 이후 2개월 미만 기간에 발매 반포 금지 횟수가 17회였으며, 압수된 부수는 1,569부에 달하였다. 이렇듯 국내의 보급이 어려워지고 사장 최봉준(崔鳳俊)에게 일제가 폐간을 강요하고 갖은 압력을 가하였다. 마침내 최봉준의 사업에까지 어려움이 미치게 되었다. 결국 『해조신문』은 1908년 5월 26일자[제75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하고 말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해조신문』은 해외에서 우리 말로 발행된 최초의 일간 신문이다. 1908년 2월 26일 한글 석판 인쇄로 창간호를 냈다. 준창호(俊昌號)[일본 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하고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와 원산 사이를 내왕하던 선박]의 선주이며 거부인 최봉준이 사장을 맡고, 왕창동(王昌東)이 편집을 전담하였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로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 사장직을 물러난 장지연(張志淵)을 주필로 초빙하여 항일 애국의 논설을 집필하게 하였다. 내용은 논설, 국내외 소식, 교민 사회의 동향, 계몽 기사로 이루어졌다. 특히 매호마다 격렬한 항일 구국 논설이 게재되었다.

의의와 평가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민회『해조신문』을 발행하여 구국 운동을 위한 러시아 한인 사회의 노력을 나타냈으며, 러시아 지역에서 전개되는 항일 독립운동의 초석이 되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 박환, 『러시아 한인 민족 운동사』(탐구당, 1995)
  • 김대룡, 「『해조신문』의 간행과 교육론」(『한국사상과 문화』63, 한국사상문화학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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