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이 광산

원어 항목명 Мицуи Майнинг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사할린주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원어 항목명 Мицуи Майнинг
성격 기업
정의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 가라후토 광산을 운영한 다국적 기업 자이바츠사의 자회사.

개설

1900년대 초 일본은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있는 가라후토 광산 지역의 식민화 정책을 다국적 기업 자이바츠의 도움으로 진행하였다. 미쓰이 광산은 다국적 기업 자이바츠의 자회사로서 설립되어 가라후토 광산 지역을 개발하였다. 1910년 이후 한국인 노동자를 가라후토 광산 지역 개발에 대거 동원하였다.

1910년대 말부터 일본인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 미쓰이 광산은 한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일본 광산 회사의 급료가 한국 기업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이 일본 광산 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이 시기 많은 일본인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주로 행정 관료로 근무하거나 사업에 종사하였지만, 농업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면서 옥토를 차지하였다. 그로 인해 많은 한국 농민은 영락의 길을 밟았는데, 이들의 유일한 출구는 가라후토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는 것이었다. 미쓰이 광산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한인 노동자를 영입했다. 먼저 미쓰이 광산 이사회가 한국 도지사에게 한국인 구인 허가를 받아내면 신해주에 설치된 회사 대표부가 한국인 노동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계약은 1년 6개월 단위로 체결했는데 교통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시의 토요하레에서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노동자의 급료가 1일 2.5엔인 데 반해 한국에서 숙련된 노동자의 월평균 급료는 15~20엔이었다. 따라서 독신 한국인 남성들은 사할린가라후토에 가기를 원했고 자연스레 이들은 미쓰이 광산으로 보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미쓰이 광산의 주요 사업은 러시아 사할린주 가라후토 지역의 대규모 석탄 매장지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의의와 평가

미쓰이 광산은 일본 정부의 사할린주 유즈노사힐린스크시 가라후토 지역의 식민화 정책에 일조했으며 한국인 노동자를 가라후토 광산 지역으로 보내는 데 앞장섰다.

참고문헌
  • Кузин Анатолий Тимофеевич, 『Исторические судьбы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ое книж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2010)
  • Дин Юлия Ивановна, 『Корейская диаспора Сахалина: проблема репатриации и интеграция в советское и российское общество』(Южно-Сахалинск: Сахалинская областная типография, 2015)
  • arirang(http://www.arirang.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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