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同義斷指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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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개항기 |
설립 시기/일시 | 1909년 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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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항일 독립운동 결사 |
설립자 | 안중근 외 11명 |
1909년 2월 26일[음력 2월 7일] 러시아 연해주 연추(煙秋) 근처의 하리에서 결성되었다. 동의단지회는 항일 운동 단체로서 의병 운동을 중시하던 결사 조직이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등 주요 지도자들와 친일 한인 처단과 의병 재거(再擧) 활동을 중심으로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심 단체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조국 독립의 목적을 도모하였다.
의병 운동이 크게 침체된 상황에서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자라는 취지 속에서 의병 재거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각지를 유세하며 병원(兵員), 자금의 획득에 전력했다. 일부 러시아 유력자의 원조 약속까지 받았지만 1908년 동의단지회 의병 진공 작전을 지원했던 최재형이 협조를 거부하면서 의병 재봉기 계획이 좌절되자 안중근은 반조국당 숙정(反祖國黨肅整) 결의의 의견을 구하고자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대동공보』의 이강을 만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이라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고 “한 그물 잡어보다 한 마리 고래가 낫다.”라며 이토 처단을 결심했다. 동의단지회 회장인 안중근이 추진했던 의병 재봉기가 최재형의 ‘지원 철회와 반대’로 좌절된 상황 타개를 위한 반대파 ‘숙정’과 ‘의병 재거’ 계획이 ‘이토 히로부미’ 작전으로 전환되었다.
국내 진공 작전 실패로 침체된 연해주의 의병 운동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결성된 항일 독립운동 단체였고,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조국 독립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의열 투쟁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