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 역사/근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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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자바이칼스크지방 치타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1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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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15년 5월 |
최초 설립지 | 러시아 자바이칼주 치타시 |
원어 주소 | Россия, Забайкальский край, гор. Чита, улица Кузнечная, дом 1 |
성격 | 독립운동단체 |
교육과 실업을 통한 한인의 자유와 평등,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1913년에는 부회장 김수려(金秀麗), 총무 태용서, 재무 고성삼(高成三), 서기 김탁(金譯)·권화순(權化純)으로 간부진이 변화하였다. 1914년에는 회장에 김수려, 부회장 권화순, 재무 태용서, 학무 김남익(金南益)이 취임하였다. 창립 당시 관할 지역은 치타, 하바롭스크, 미영, 상우진 등 9개 지방회였으나 1913년에는 16개 지방회로, 1914년에는 21개 지방회로 그 세력이 확대되었다. 러시아 치타 지역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 지방총회는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세력이 위축되었고 결국 1915년 5월 러시아에 의해 해체되었다.
시베리아 지방총회에서는 독립 전쟁을 위한 재러 한인의 교육을 강조하였다. 시베리아 지방총회 기관지 『대한인정교보』 11호에서는 「재외 동포의 현상을 논하여 동포 교육의 긴급함」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발표해 교육을 해야만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역설하며 어린이보다 어른의 교육을 강조했다.
시베리아 총회에서는 실업도 추진하고자 하였다. 1차 대의원 총회에서는 대한인국민회 회표(會票)를 제조, 판매하여 그 수입으로 실업 자금을 만들고자 하였다.
시베리아 지방총회에서는 동포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대황조 성탄절’, ‘건국 기원절’[10월 3일], ‘한산도 전승 기념일’[7월 8일], ‘살수 전승 기념일’[7월 28일], ‘크게 욕된 날’[8월 29일] 등의 5대 기념일을 정하였다.
대한인국민회 시베리아 지방총회는 러시아 정교를 내세워 단체를 이끌어 나갔으나 사실상 독립운동 단체였고, 미주의 대한인국민회의 시베리아 지회로 유기적인 운영을 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