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민의회

한자 大韓國民議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9년 2월 25일
해체 시기/일시 1919년 8월 30일
이전 시기/일시 1920년 5월
최초 설립지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시
주소 변경 이력 러시아 아무르주 블라고베시첸스크시
성격 독립운동단체
정의

1919년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설립된 재러 한인과 재만 한인의 임시 정부 성격을 지닌 독립운동 단체.

개설

1919년 2월 25일 대한국민의회는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에서 설립되어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대표자를 파견하고 독립 선언서를 발표했다. 대한국민의회는 임시 정부 통합을 위해 해체되었지만 ‘승인-개조’ 문제로 부활을 선언했다. 대한국민의회는 1921년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을 창립했다.

설립 목적

제1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국제 정세와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한인들을 통합하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19년 2월 25일 러시아 연해주 니콜스크우수리스크 시에서 제2차 전로한족대회가 소집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결 이후 국제 정세와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만주에서도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러시아와 만주의 한인 단체들이 공동 행동에 나설 것을 모색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직후였다.

1918년 12월 전로한족회중앙총회는 북간도 민족주의자들에게 사람을 파견하여 베르사유 강화회의에서 독립을 요구하자는 제안을 했다. 북간도 한인 지도자들은 회의를 거듭한 끝에 제2차 전로한족대회에 대표자를 파견했다. 제2차 전로한족대회에서 전로한족회의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고 ‘대한국민의회’라고 명명되었다. 대한국민의회는 의장에 문창범, 부의장에 김철훈, 서기에 오창환, 선전부장에 이동휘, 참모부장에 김립이 선출되었다. 한편 상해 임시 정부와 대한국민의회가 한성 정부를 받들어 상해에 통합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여 1919년 8월 30일 대한국민의회는 해산했다. 그러나 ‘승인-개조’ 분쟁이 불거지자 대한국민의회는 불참을 결정하고 1920년 2월 15일 부활을 선언했다. 1920년 연해주 ‘4월 참변’ 후 대한국민의회는 아무르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리고 이르쿠츠크에서 공산주의 그룹을 모아 1921년 5월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을 창립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국민의회는 해외 모든 한국인의 대표 기관이자 한국 임시 정부를 자임했다. 대한국민의회는 베르사유 강화회의에 윤해, 고창일 두 사람을 대표자로 파견했다. 1919년 3월 17일에 문창범, 김철훈, 오창환 등 간부 명의로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11개국 영사관과 러시아 당국에 독립 선언서를 배포했다. 그러나 러시아 당국의 시위 금지로 도시에서의 평화적 시위운동이 사실상 어려워지면서, 3월 말 이후 대한국민의회는 선전부장 대리인 김하석의 주도로 대한국민의회의 3단계 방략에 입각하여 무장 투쟁 계획을 추진했다. 대한국민의회의 지원을 받아 김하석은 항일 투쟁을 위한 ‘한족독립기성회(韓族獨立旣成會)’를 조직하였다.

현황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아무르주 블라고베시첸스크에 대한국민의회가 쓰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대한국민의회는 단순히 러시아 한인들의 대표 기관이 아니라 재만 한인들까지 망라한 단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 정부 통합 과정에서 나타난 한인사회당대한국민의회의 분열은 한인 사회주의 운동의 분열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 임경석,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역사비평사, 2003)
  • 『러시아·중앙아시아 한인의 역사』(국사편찬위원회, 2008)
  • 박환, 『러시아 지역 한인의 삶과 기억의 공간』(민속원, 2013)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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