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복군정부

한자 大韓光復軍政府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13년 10월 말~1913년 11월 초
이전 시기/일시 1914년 8월
최초 설립지 러시아 원동
설립자 이상설|이동휘|계봉우|이종호
정의

191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권업회의 중심인물인 이상설, 이동휘 등이 독립군을 양성, 지휘할 목적으로 설립한 비밀 조직.

개설

권업회가 시베리아 이주 개척 50주년인 1914년에 맞추어 독립 전쟁론 구현을 위해 건립했다. 또한 1914년은 러일 전쟁 10주년에 해당하는 해로 제2의 러일 전쟁이 무르익고 있다고 전망했다. “군사적 행동의 필요가 있는 때에 가급적으로 신속한 수단을 취할” 조직으로 민족 역량 결집에 필요한 새로운 군사 지휘부의 건설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중국, 러시아의 주요 민족 운동가들이 ‘연합대표회’를 개최하고 건립한 비밀 조직이다. 일반적으로 1914년 건립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설립 시기가 정확하지는 않다. 이인섭의 회고록에서는 1913년으로 나와 있으며, 반병률은 1913년 10월 말에서 11월 초로 추정하고 있다.

설립 목적

독립 전쟁을 수행할 군사적 활동을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1913년 비밀리에 비밀 군사 지휘부의 건설을 추진했다. 연해주와 독립운동의 기지화가 추진되고 있던 서북간도에 3개 군구(軍區)를 설치하였다. 정부 소재지인 연해주를 제1 군구로, 간도를 제2 군구, 서간도를 제3 군구로 분정(粉定)하였다. 대한광복군정부의 통제권은 정도령(正都鈴)이 맡았다. 초대 정도령에는 권업회 창설 당시 주도권을 가졌던 이상설이 선출되었다. 책임 비서는 계봉우가 맡았다. 이동휘김립, 이종호, 장기영등과 1914년 4월 러시아, 중국 국경 지대인 북간도 왕청현 나자구 한인촌에 장교 양성을 위한 사관 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동휘가 제2대 정도령이 되었다. 대한광복군정부가 비밀리에 편성했다는 3군구의 확실한 병력은 알 수 없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러시아 전시 체제 확립에 따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계엄령이 포고되어 대한광복군정부는 1914년 8월 그 모체인 권업회와 함께 북간도로 중심지를 옮겼다. 1915년 3월 중국과 일본 간의 21개조를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에 대한광복군정부가 중심이 되어 한중 연합에 의한 무력 항쟁 계획을 수립하였다. 동년 5월 8일 이동휘대한광복군정부의 최고 사령관인 정도령의 명의로 활동 가능한 범위 내에서 군구 사령관과 그 휘하의 각급 군직을 임명하였다. 훈춘 의용군 사령관에는 육군 참독 황병길, 연길, 화룡, 왕청현의 북간도 사령관에는 육군 참독 장지영[장기영?], 봉천, 안동현, 의주, 장백부 일대의 서간도 사령관에는 김호이가 임명되었다.

이러한 한중 연합군의 항일 무력 투쟁 계획은 5월 9일 21개조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의 강력한 요구로 중국 당국은 한인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이에 따라 대한광복군정부의 독립운동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의의와 평가

재중 한인과 재러 한인을 결속시키고 군사적 통일을 이루려 했다는 점과 독립운동 방략을 독립 전쟁으로 귀일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 반병률, 『성재 이동휘 일대기-조국 광복만을 위해 살다 간 민족의 거인』(범우사, 1998)
  • 윤병석, 『해외 동포의 원류-한인 고려인 조선족의 민족 운동』(집문당, 2006)
  • 계봉우, 「아령실기」(『독립신문』, 1920. 2. 20~192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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