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尼港部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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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0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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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은 러시아 니콜라예프스크를 장악했다. 니콜라예프스크가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자 니콜라예프스크에 거주하고 있던 박 바실리[朴秉吉], 김낙현[김 인노겐치이], 정서화, 엄지연 등은 고려청년동맹(高麗靑年同盟)이라는 지하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러시아 적군 빨치산 트랴피친 부대가 니콜라예프스크에 도착하자 고려청년동맹과 유조심이 발기하여 니콜라예프스크와 그 주변 한인들은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기로 결정하고 트랴피친에게 상신서를 제출했다. 그 결과 트랴피친 부대 안에 한인 빨치산 부대가 조직되었다. 부대의 사령관으로 트랴피친의 측근인 사소프가 임명되었다. 참모장으로는 니꼴라예프스크 한인학교 교사 출신인 박 일리아가 임명되었다. 부대는 4개 중대인 약 400명으로 이루어졌다. 중대장에는 유조심, 임호, 김 인노겐치이, 안기석이 임명되었다. 바로 이 부대가 사할린 의용대라고 불리게 되는 니항 부대(尼港部隊)이다. 부대원의 구성은 대부분 니콜라예프스크 주민, 주변 금광과 어장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1920년 3월 11일 밤 중립을 지키고 있던 일본군은 갑자기 트랴피친 부대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이 공격으로 트랴피친이 부상을 당하고 축근들이 사망했다. 곧 이어 트랴피친 부대와 일본군 사이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 군대는 일본 영사관으로 가서 농성을 했지만 트랴피친 부대의 포격으로 전멸당했다. 병영에서 항복한 132명을 제외하고 일본군과 일본 거류민들이 전멸했다. 이 전투에서 니항 부대는 최전선에서 전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