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勸業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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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1년 12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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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14년 9월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12년 4월 22일 |
최초 설립지 |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
성격 | 독립운동단체 |
설립자 | 이종호[발기인] |
1911년 12월 19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에서 조직된 재러 한인 독립운동 단체.
권업회의 목적은 시베리아 한인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경제 문제와 항일 운동을 추진하는 정치 문제를 결부시켜 조국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14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시에는 계엄령이 발표되었다. 이에 러시아 주재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영사관에서는 러시아에 권업회의 해체와 『권업신문』의 폐간을 요청했고, 이종호, 김동녕, 김하구, 오주혁, 이갑, 안공근 등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노보키예프스크, 니콜스크-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러 한인 독립운동가들을 러시아에서 추방할 것을 요청했다. 러시아 관헌들은 일본 측의 요구에 따라 1914년 8월 7일 권업회의 해산을 결정하고 이종호를 추방했으며 『권업신문』의 간행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권업회는 러시아 니콜스크-우수리스크와 연해주 여타 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권업회는 신문부를 따로 두어 『권업신문』을 발행했다. 신문부 총무에 한형권, 부장 겸 주필에 신채호, 부원에 박동원(朴東轅), 이근용(李瑾鎔) 등을 임명하여 신문 간행을 준비하고, 1912년 4월 22일 제1호를 석판 인쇄로 창간했다. 『권업신문』은 1914년 8월 30일까지 총 126호가 간행되었다. 『권업신문』을 통해 권업회 지회의 구체적인 조직 상황과 주요 간부의 명단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권업회에서는 총독 곤다치(Л.Н. Гондатти)의 허가 아래 이만[현재 달레네첸스크] 이북의 큰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획득하고 여기에 러시아에 입적한 한인들을 이주시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군사 교육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권업회는 이만 이북 지역에 한인 집단 이주지를 정하고자 하였고, 그 지역에 농작지 개척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재러 한인들의 귀화 추진 활동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