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軍備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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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19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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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21년 7월 13일 |
성격 | 독립군부대 |
1919년 중국 장백현에서 조직되어 1920년 러시아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한 무장 독립군 부대.
정식 명칭이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인 군비단(軍備團)은 1919년 11월 1일[음력 9월 9일] 중국 장백현(長白縣) 지역에서 조직된 단체다. 군비단은 중앙에 총무부, 이사부(理事部), 군사부, 경호부, 문화부, 서무부, 교통부, 외무부를 두고 함경도 각 지방과 간도 일대에 지단(支團)을 두었다. 군비단장은 이희삼(李熙三)이었다.
중국 장백현 일대에서 상해 임시 정부와 연계를 통해 군사 활동을 할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21년 7월 13일 이만의 군비단 군사부는 제3회 회의를 열고 군비단의 명의를 고려혁명의용군(高麗革命義勇軍)으로 고치고 소비에트 적군과 보조를 같이할 것을 결정했다.
1919년 초에 중국 장백현 일대에서 조직되어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가 상해 임시 정부와 연계를 갖고 1919년 11월 1일[음력 9월 9일] 군비단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출범했다. 장백현 일대의 한인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여 활동하던 군비단은 군사 행동을 위한 무기를 구입하려고 노력하였고, 연해주에서 무기를 구입하기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20년 4월[양력 5월] 군비단 군사부장 김찬을 대표로 구성된 일행이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군비단의 무기 구매 사업을 중개하고 있던 소년모험단의 총무인 홍파는 바로 직전 상해로 가서 한인사회당과 연해주에 한인 빨치산 부대를 조직하고 통합할 계획을 세웠다. 무기 구입을 하러 간 김찬의 일행은 군비단의 군사 본부를 연해주로 옮길 것을 홍파와 협의했다. 이전 지점을 러시아 연해주 이만으로 결정한 후 돌아갔다.
연해주에서 돌아온 후 군비단은 1920년 11월 15일[양력 1921년 1월 15일] 제2차 대회를 열고 군사 본부를 연해주로 옮길 것을 결정했다. 군비단은 총 9회에 걸쳐 이만을 향해 이동했다. 이만은 당시 소비에트 적군과 백군 사이의 접경 지대로 소비에트 적군의 관할하에 있었다. 군비단은 이만에서 전열을 정비한 다음 자유시로 옮겨간다는 것이 애초 계획이었으나 자유시 내에서 무장 부대 간 세력 경쟁으로 군비단의 계획은 수정되었다. 군비단 군사부는 군대를 이만 부근 한인 마을에 나누어 주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