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혁명의용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러시아 연해주지방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1년 8월 16일
개칭 시기/일시 1921년 9월 25일
최초 설립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주 달레네첸스크시
성격 무장 독립운동 단체
정의

1921년 러시아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한 군비단을 개편한 재러 한인 무장 독립군 부대.

개설

군비단은 1919년 11월 1일 장백현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 부대들이 상해 임시 정부와의 연계 속에서 결성한 무장 부대이다. 조직 당시 단장은 이희삼이었으며, 대부분이 함경도 출신으로 1910년 이후 만주에서 활동하던 투사들로 구성되었다. 장백현 일대에서 의연금을 모집하여 독립 전쟁을 위한 무기 구입 등의 활동을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소년모험단의 총무로 군비단의 무기 구매 사업을 중개하던 홍파를 통해 한인사회당연해주 일대에서 한인 빨치산 통합 부대를 조직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한인사회당의 계획에 동참하여, 1920년 11월 15일 군비단연해주로의 이동을 결정하였다. 이동 결정에는 또한 경신참변으로 인해 간도에서 독립군의 활동이 힘들어진 이유도 있었다. 총 9차례에 걸쳐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한 군비단은 신농평, 와구통, 싸인발 등 이만 근처 한인 마을에 분산 주둔했으며, 고려공산당 주선으로 러시아 적위군과도 제휴하였다. 1921년 8월 16일 이만에서 제3차 회의를 개최하고 군대의 명의를 고려혁명의용군으로 개칭하였다. 군제는 1개 대대에 3개 중대로 편성하였다. 제1 중대장에 윤동선, 제2 중대장은 오동명, 제3 중대장에 김일수가, 교관으로는 김명덕, 헌병대장에 유세홍, 헌병 소대장에 강상진 등이 선임되었다. 8월 20일에는 흑룡주 주당간부 고려부 책임 비서 박영이 사회주의 선전을 위한 야체이카를 고려혁명의용군 내에 조직하였다.

설립 목적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군 부대들의 통합 부대 결성과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전 전개가 고려혁명의용군 결성의 목적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고려혁명의용군은 사관 양성 속성과를 두어 군사 교육을 장려하고 각 군대에 무기를 지급하여 교련을 실시하였다.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주민의 농사일을 의무적으로 돕고 마적 방어에 힘섰다.1921년 9월 20일 각지 혁명 단체의 통일을 목적으로 수청 혈성단에 박춘근, 유홍기를 파견하였다. 자유시의 고려혁명군정의회김찬을 파견하였지만 자유시 참변의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중국령으로부터 이용, 한운용, 김홍일이, 흑룡주로부터 임상춘이 도착하면서 애국 독립 투사들의 독립 전쟁을 위한 새로운 계획이 진행되었다. 1921년 9월 25일 이만에서 전열을 갖춰 자유시로 가겠다는 애초 계획을 정비하여 러시아 인민혁명군과 연합하여 백위파군 및 일본군과 전투를 결정하고 고려의용군사의회를 조직하였다. 간도로부터 이동하여 이만에 이미 머물러 있었던 마용하, 서상룡, 맹준건 등도 참가하였다. 또한 재러 한인 농촌 마을이 많은 이만에서 군인 모집 사업을 전개하였다. 1921년 12월 초부터 이만, 비킨, 하바롭스크, 인, 볼로차예프카 등지의 연해주 해방 전쟁에 참전하여 반제, 반일의 기치 아래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구축하는 전투의 선두에서 싸웠다.

의의와 평가

한인사회당과 단일 지휘 체계를 가진 독립군의 통합 운동을 전개하였더. 연해주 이만으로 이동한 뒤에는 사회주의를 수용하고 반제, 반일의 국제적 차원의 연대 속에서 독립 전쟁의 일환으로 연해주 해방 전쟁에 참전하여 일본군을 상대로한 전투에 참여하였다.

참고문헌
  • 반병률, 『1920년대 전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 윤상원, 「러시아 지역 한인의 항일 무장 투쟁 연구(1918~1922)」(고려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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