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高麗革命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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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설립 시기/일시 | 1922년 9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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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22년 11월 15일~1922년 11월 24일 |
성격 | 독립군부대 |
1922년 9월 러시아 연해주 아누치노에서 결성된 재러 한인 무장 독립 부대.
1922년 8월 조직된 러시아 공산당 연해주 주간부 내 고려부가 ‘고려 의병대 통일 문제’를 ‘러시아 연해주 혁명군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군사의회는 러시아 공산당 주간부 대표, 러시아 연해주 의병대혁명군정의회 대표, 고려의병대 대표로 ‘연해주 고려인의병대혁명군정의회’를 조직하고 고려인 의병대를 통일적으로 지휘토록 하였다. 1922년 9월 5일 공산주의 군대 대표 김규식, 연해주 당간부 대표 군정위원장 최호림, 주 당간부 내 고려부 대표로 사령관 안동백, 러시아 연해주 의병대혁명군정의회 대표 의원 스탄코프, 고려인 의병대 대표 의원 한창걸이 회의를 열어 연해주 고려인의병대혁명군정의회 지휘하에 고려인 의병대가 ‘고려혁명군’으로 통일되었다. 약 1,500여 명의 병력으로 2개 본대와 3개 지대를 두었다. 제1 본대는 포시에트 훈춘 군사 구역에 두고 수비와 총사령부를 겸하게 하였다. 제2 본대는 아누치노 군사 구역에 두었으며, 제3 지대는 알렉세이 군대까지 직속시켜 그 지방을 수비하게 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흩어져 있는 각지 재러 한인 빨치산 군대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였다.
고려혁명군은 1922년 10월에 연해주 백위파군을 몰아내는 최후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1월 20일 당시 편제는 사령부, 무기부, 경무부, 위생부, 향무국, 재무국, 피복국, 재봉국 등의 부서와 2개 대대와 1개 특립 대대로 구성되었다. 당시 고려혁명군 총사령부에 소속된 병력은 677명이었다. 총사령부는 총사령관에 김규식, 군정위원장 최호림, 사령부관 강남일, 제1대대장 최준형, 기병대장 이범석, 기관총대장 나만규, 치중대장 이철, 무기부장 서용욱, 경무부장 정통, 경리부장 최춘선, 위생부장 박성철, 군의관 유치얼, 정치부장 여인빈이었다. 제2 본대는 한창걸이 이끌었다. 시베리아 내전에서 러시아 빨치산과 적위파군과 협력하여 백위파군과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던 고려혁명군은 1922년 11월 초 원동 총사령관 우보레비치의 명령과 고려혁명군정의회 작전 명령에 따라 일본군의 철수 후인 1922년 11월 15일부터 24일에 걸쳐 무장 해제되었다.
시베리아 내전 당시 고려인 통합 부대 결성이라는 의의가 있으며, 반제, 반일의 항일 운동을 국제주의적으로 실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