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啓洞學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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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러시아 연해주지방 블라디보스토크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개교 시기/일시 | 1907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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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시기/일시 | 1909년 8월 |
최초 설립지 |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
성격 | 학교 |
설립자 | 최재형|한익성|이동국|김학만 |
1907년 5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한인촌에서 개교한 연해주 최초의 재러 한인 학교.
계동학교 설립 취지서에는 청년 자제를 계도하고 문명을 계발하는 교육을 목표로 함을 밝히고 있다.
1901년부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들은 학교 설립을 위한 노력을 했지만 한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고 학교가 세워진 것은 1905년 이후이다. 당시 학교 설립 운동이 청년 세대의 실력을 양성하는 길이고 결국 실력 양성이 독립을 전취할 것이라 믿었다. 1907~1908년 사이 러시아 연해주 한인촌에는 한인 민족주의 학교가 10여 개 설립되었는데 최초로 세워진 학교가 계동학교이다. 일제 침략과 조국 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프로그램과 한국의 말과 역사, 지리 등을 가르쳤다. 대한학교 학생들과 당시 한국의 상황을 주제로 연합 토론회를 개최하거나 전명운, 장인환을 위한 의연금도 모집했다. 계동학교의 설립은 러시아 연해주 전체 한인들과 러시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민족의식을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계동학교는 한인 사회의 의연금으로 운영되었다. 1908년 교장에 김학만, 감독에는 김치보, 총무는 차석보가 담당했다. 교사로는 이현재, 김연상, 조창용, 김종철등이 근무했으며 한인 교사 6명, 명예 교사 11명이 있었다. 3개반[7세반, 8~12반,13세 반]으로 구성되었으며, 학생 수는 대략 40~50명 정도였다. 교과목은 한문, 한글, 습자, 산술, 수신, 체조, 한국 지리, 역사, 러시아어였다.